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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Oct 12. 2022

내 인생의 속도와 거리는 내가 결정한다

드라마 멘탈코치 제갈길 카피가 마음에 든다.

드라마 카피 한번 죽인다. 내 마음에 쏙 든다. 평일에는 텔레비전 볼 시간이 없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드라마 2개 정도를 챙겨본다. 거기에 더해 주말에 재방송하는 멘탈코치 제갈길을 챙겨본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비단 체육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한때 몸담았던 사회도 정치판이었다. 그래서 나 같이 정치 못하는 인간은 곤욕스러웠다. 알음알음으로 들어온 사람도 꽤 있었고, 그들끼리의 무리가 형성돼 끼리끼리 정치를 펼치며 한 사람을 몰아세우고, 쫓고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외국계 회사에 몇 년을 다닌 경험으로 국내 회사의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한심하면 뭐 하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에게 피해가 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매일매일 펀치로 맞는 듯한 일은 물론 뒤통수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러니 체육계를 다룬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사회가 운영된다면 미래가 어둡다. 실제 실력이 아닌 뒷거래와 정치가 난무하고, 돈이 있는 집은 돈으로 국가대표를 매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의 멘탈코치 제갈길을 보면서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이 존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세상이 바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정직하게, 양심 있게,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 거기에 실력도 좋은 사람이 정정당당하게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멘탈코치 제갈길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윗사람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들이 많으니, 불합리한 일도 웃어 넘기기 일쑤다. 이런 일들이 어쩌면 당연시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참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참게 되는 상황들이 많아질 때 엉뚱하게 윗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멘탈코치 제갈길 같은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름도 그러고 보니 제갈길이다. 제 길을 간다는 의미로 개인적으로 해석해 본다. 우리 모두 바라는 바이지만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커서 무엇이 되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나도, 공교육의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획일한 된 선택지, 획일한 된 사고를 가지며 성장했다. 진정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남들 사는 대로 살았다. 결국 20대~30대 후반까지도 심한 내적 갈등으로 인해 오랜 방황을 해야만 했고,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 숱한 방황 속에 하나 발견된 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이라도 발견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이 돈이 되냐고 물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유명해질 자신 있냐고 물으면 자신없다. 그러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아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비록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나에 대해 알았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 그 전의 삶은 깜깜하고 답답했다. 내가 원하는 욕구가 뭔지 한가지도 못 찾았으니 말이다. 스포츠, 요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말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우리가 모두 제갈길이 되는 사회적 환경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에 갔다가도 의대 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부만 잘한다고 의사가 맞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의사라는 직업을 쫓아간다. 그게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꿈과 직업이 동일시된다. 제발 그 동일화된 개념부터 깡그리 없어졌으면 싶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너는 커서 어떻게 살고 싶니, 너는 지금 무엇을 좋아하니 이런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뭐니?”라고 물어본 사람에게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직업과 연결한다. 꿈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바꿨으면 좋겠다.  

   

청소년 시절, 꿈이 뭐냐는 질문이 그렇게 싫었다. 초등학교 때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말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몰랐을 나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가질 나이가 되어서도 특별히 꿈이 없었다.      


다양한 직업도, 다양한 환경도 겪어보지 않는 청소년에게 꿈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은 어른의 자세일까. 차라리 보다 많은 경험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천편일률적인 직업을 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제갈길을 보면서 그의 성격에 박수를 보낸다.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남도 돌아볼 줄 알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그가 있기에 함께 불합리와 싸워 서로가 발전되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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