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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Oct 13. 2023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2002년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22박 23일을 걸었다. 우리나라를 종단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에 다가가는 여정이 쉽지 않았다.


박카스의 국토대장정에 몇 번을 지원하였으나 연거푸 탈락했고, 더 이상 국토대장정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며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희망의 소식이 눈앞에 펼쳐졌다.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교내에서 국토대장정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교내 이곳저곳에 부착되었던 것이었다. 현수막을 발견하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시골 태생이라 걷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이력이 나 있었다. 어릴 적 자란 마을에서 면 소재지로 나가려면 십리 즉 편도로 4킬로미터를 걸어야 했고, 왕복으로는 말하자면 이십 리 거리였다. 학생 시절, 노상 걸었다. 그렇게 인생을 통틀어 많이 걸어 질릴만한데도 나는 여전히 걷기를 사랑한다.


걷기 사랑과 함께 탈락해도 좋으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교내 국토대장정 행사에 참가자 신청을 했었다. 비록 교내에서 접수한 국토대장정이었지만 경쟁률이 꽤 높았다. 면접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대기실에 앉아 이것마저 떨어지면 국토대장정과 연이 없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만약에 떨어지면 정말 국토대장정과는 운이 없는 사람이다 치부하며 잊어버리려고 했다.



다행히도 국토대장정 대원으로 선발돼 꿈에 그리던 국토대장정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운영진을 제외하고 100여 명이 함께 하는 국토종단이었다. 예상보다 큰 규모의 기획이었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하며 타인과 22박 23일을 함께 보내는 것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때론 타인과의 마찰이 일어나거나 서운한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계속 ‘꿍’하고 있을 수만 없는 일, 온종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티격태격하며 해결하곤 했다.


서로 힘들 때 자신 속한 조가 아닌 다른 조 사람들에게 힘을 받으며 일어서기도 했다. 그렇게 완주했던 국토대장장은 내 인생 전체에서 잊지 못할 한 순간이며, 인생의 한 획을 큰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국토대장정을 함께한 몇 명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2년에 국토대장정을 했고, 현재가 2023년이니, 무려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기나긴 시간이 흘렀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이따금 연락을 하면 우리는 며칠 전에 만난 사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어디 가서 이런 관계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한두 달쯤 전에 페이스북 친구를 보다가 문득 국토대장정을 함께한 한 친구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는 다른 조원이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다른 조였지만 종종 장난치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였다. 그들과 교류할 때 사용하던 전화번호에서 나는 두어 번 전화번호를 바꿨다. 일부 사람들의 연락처가 없어지며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지고, 인연도 끊어졌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 있었다. 페이스북 친구를 보다가 그날따라 유독 나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고, 용기 내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한참이 지난 후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왔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 후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그 친구와 내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당시 그 친구보다 한참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그날 단번에 깨졌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이젠 다 같이 나이를 먹는구나 싶었다. 어느덧 우리는 40대에 접어들었고 2002년으로부터 이십 년 이상이 훌쩍 지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생각하면 엊그제 일어났던 일인데, 벌써 이십 년이 지나다니 속절없이 세월만 흐른다.


어쨌거나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연락을 받아준 그 친구에게 고맙다. 종종 미친 사람처럼 한참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 연락하는 습관이 있다. 오랜만에 연락한 일에 부담 갖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니 연락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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