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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n 25. 2019

지금보다 한걸음 움직이려 한다.

왼손잡이의 호빵 수세미

손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터라 방송에서 한옥을 짓는 사람, 장구 만드는 사람 등 장인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챙겨봤다. 사람의 손은 위대하다. 만들 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매력이다. 로봇이나 기계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만든 물건보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는 것이 정감이 가며, 사람 냄새가 나는 느낌이 좋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 가죽 공예, 모자 공예, 목 공예 등을 배웠다. 앞으로의 먹고 살길은 ’손으로 만드는 일이다’ 하면서 뛰어들었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나 자신의 문제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지속하지 못했다. 매월 들어가는 수업료와 먹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두 마리 토끼를 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배움을 포기하고 현실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손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뜨개질이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는 선생님도 가르쳐주다 포기했고, 성인 돼 바느질을 배워보고 싶어 수업에 참여했을 때 가르쳐주는 선생님 또한 포기했었다. 나란 사람은 절대 바느질, 뜨개질을 배울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선생님들이 나를 포기했던 이유는 아마도 바느질이나 뜨개질하는 방향이 달라 설명하기가 곤란하고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어떻게든 할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내 머리는 뜨개질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문득 어느 날 호빵 수세미가 눈에 들어왔다. 예쁘게 떠진 수세미를 보며 나도 '한번 뜨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나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우아, 이쁘다'라고 연신 중얼거릴 뿐이었다. 몇 번의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예쁘게 떠진 수세미를 구매했다. 구매해 나에게 온 호빵 수세미를 보니 '한번 시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영상을 찾았다. 지난달 5월이다.


영상을 찾아보지만, 왼손잡이 영상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몇 개 올라와 져 있는 영상을 찾았고, 영상을 수십 번 보고 기본을 익혔다. 기본을 익힌 뒤, 오른손으로 뜨는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고 호빵 수세미를 완성했다. 처음에 만든 호빵 수세미는 아주 엉성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지만,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


뭔가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내 안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붙어 자신감 바닥이 나에게 뭔가 용기를 주는 사건이다. 벌써 거의 50개를 떠가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겠지 싶다.


조금씩 지금보다 한걸음 움직이려 한다. 기나긴 실패로 점철된 나날들에서 탈출하려면 조금씩 작은 성취들이 필요하다. 그런 게 삶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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