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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13. 2019

낯선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들다.

아이의 순수한 포옹은 나를 위로해줬다.

2015년 망막질환으로 한쪽 눈이 거의 실명한 엄마는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 큰 대학병원의 주치의 교수를 따라 병원을 옮겼다. 많은 환자가 교수님을 따라 병원을 옮겼다. 병원에서 앉아있다 보면 서로 어떻게 병원을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는데 대부분 선생님이 있었던 대학병원에서 진찰받았던 환자들이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편안한 진료로 선생님을 많이 신뢰해 같이 따라오신 것이다. 우리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우리만 선생님을 따라 병원을 옮긴 것이 아니었다.     


2015년 4차례 수술 중 3차례를 선생님이 했다. 수술 후 불안해하는 엄마의 어깨나 손을 살포시 잡았는데 엄마는 내가 잡을 때보다 선생님의 손짓 하나에 더 안심했다. 그렇게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 한마디, 행동은 분명 우리가 계속 인연을 이어오게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더 악화되지 말고, 지금 상태를 유지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그렇게 선생님이 근무하시는 병원에 찾아가 앉아있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처음이 어렵지 자주 가고, 자주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한 교실에서 365일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같은 친구들과 함께 온종일 함께했다. 그렇게 처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낯설었던 첫날을 잊은 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가 되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된다.    





Photo by Jonathan Borba on Unsplash

        

지난주 토요일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접수하고 자리를 둘러보다가 엄마와 사내아이 두 명이 앉아 있는 옆자리가 비워 그곳에 앉았다. 한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막내로 보이는 아이는 엄마 옆에서 앉아 주변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막내 아이의 레이더망에 내가 걸렸나 보다. 아이는 나에게 말 걸기 시작했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뒤척이며 나에게 눈빛을 보내왔다. 아이를 좋아해 평소에서 지나가는 아이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이라 아이와 눈빛을 피하지 않고 아이의 눈빛에 답을 보냈다. 점점 아이와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랑스러운 아이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라 느껴진다. 형은 책을 읽으면서도 동생을 살피다가 적절하게 도와준다. 엄마는 형이 많이 도와주다시피 하면 ‘동생이 할 수 있으니 기다려줘 봐’라고 말을 건넨다. 아이가 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엄마, 동생을 잘 살피는 형, 괜히 사랑스러운 아이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이들의 우애에 내가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내 품으로. 내 품으로 '속' 들어오며 나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아이란 말인가. 아이는 곧 나의 구닥다리 반바지에 있는 주머니에 관심을 보인다. 반바지 주머니 단추가 풀어져 있어 고사리손으로 잠그려는데 잘 안된다. 그렇게 아이는 내 품 안에 들어와 맑은 눈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천천히 해보라고 말하면서 아이가 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가 잠가보려고 하는 사이에 형의 이름이 불리며 진찰실로 들어간다. 잠시나마 아이와의 교감을 나눈 행복한 여행이었다.


     



아이가 품 안으로 들어올 때 아이로 인해 행복했다. 낯선 사람에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아이를 보면서 지난날 나는 어땠는가 떠올려본다. 지나치게 방어막만 쳤던 나이다. 내 앞에 경계를 단단히 쳐놓고 선 그어 놓고 '여기까지다' 하면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상대방도 나의 경계를 느끼곤 했다. 내가 먼저 마음을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 다가갔다면 상대방도 분명 마음에 문을 열고 내게 다가왔을 것이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그 아이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타인과의 포옹 경험이 많지 않아 작은 아이가 나의 품으로 들어왔을 때 아이에게 위로받았다. 회사 강당에 모인 직원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서로 껴안아 보세요’라는 말에 옆에 있는 사람과 껴안았을 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아 속으로 눈물을 삼켰던 일, 몇 년 전 강원도 통나무집에서 하는 프로그램 참여해 처음 만난 분들과 인사로 포옹하자 ‘너 참 잘 살아왔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꺽꺽 울었던 날이 순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처럼 나는 아이의 작은 포옹으로 내 인생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는 너의 눈빛을 잊지 못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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