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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16. 2019

자신의 경험이 쓸모없다고 여겨지더라도 누군가에게는

2000년 중반 여성에게 여전히 선입견이 존재하던 현장에서 우연히 영업을 시작했고, 영업 후 본사에서 트레이드마케팅 업무를 했었다. 업무는 고강도였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회사는 13층에서 15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내가 근무했던 14층에서 홀로 남아 전체 조명을 끄고 퇴근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가끔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회의감이 들었지만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고, 수치 보는 일이 흥미로웠다. 내가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기획하는 일이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몰입도 있게 매달렸었다.



서른 초반 전국적인 업무를 진행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감이었고, 능력 밖인 사람이 일을 맡아 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의 굴레에 갇혀 숱한 밤을 자책하며 일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내 안의 몸부림은 잘 몰랐을 것이다. 겉모습에서는 적어도 전국 업무를 한다는 초조감, 부담감, 두려움이 안 보였던 것 같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보다 냉정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사람 참 일을 못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일은 산더미이었고, 새로운 일은 매일 쓰나미처럼 쏟아졌다. 머리의 용량은 터질듯했고, 버거웠다. 허나 해내고 싶었다. 다행히 컴퓨터를 잘 만지는 편이라 손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음을 감사했다.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 수없이 질문하고 깨지며 일하는 방식을 터득해 나갔다. 서서히 트레이드마케팅 업무를 익혀나갔다.       

   




당시 트레이드마케팅 업무가 한국에 들어와 세팅되기 시작한지 몇 년 안 돼, 회사 내부에서도 시행착오가 잦았다. 업무 외적으로 트레이드마케팅 관련 책이나 정보를 찾아 읽을 만한 것들이 찾았으나 한국에서는 딱히 없었다. 결국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회사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찾아가며 업무 롤을 공부하며 업무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렇게 배운 트레이드마케팅은 다른 일을 할 때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업무 능력을 성장시킨 트레이드마케팅 업무가 국내회사에서는 많이 없다는 것을 회사를 나오고서야 알았다. 타 회사의 근무환경, 업무 등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 비록 트레이드마케팅 업무가 많은 회사에서 다루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이 업무를 하면서 실력이 향상된 나는, 내가 경험한 업무적 내용에 관해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쳤다. 거기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는 주변 지인 중 이따금 트레이드마케팅에 관해 물어왔었던 일도 있으니 더더욱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지식과 정보를 글로 적어 트레이드마케팅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나의 지식이더라도 도움이 될수만 있다면 쓰고 싶었다. 책을 찾아가며 배우고 익힐 때 답답함을 느꼈던 나처럼, 트레이드마케팅을 하고픈 어떤 누군가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까 싶었다. 자판기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개인 블로그에 몇 개의 꼭지로 트레이드마케팅 업무에 관한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을 당시와 달리, 지금은 트레이드마케팅 업무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온라인, 모바일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추세에 걸맞게 트레이드마케팅의 업무도 다변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록 정리한 업무는 구닥다리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트레이드마케팅 업무를 경험한 수준에서 적었기에 여전히 도움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2014년 어느 날, 블로그에 나의 글을 보고 회사 내부 업무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추측건대 나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부서장급 이상으로 보였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 연락을 받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합격이에요, 1차 면접 진행할 거예요’. 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이런 타이밍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놀랬다. 자료를 요청한 회사에서 면접을 요청한 것이다. 그것도 트레이드마케팅 업무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자료를 요청한 사람에게 면접을 본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얼마 후 1차 면접에 합격하고, 2차 면접도 봤다. 2차 면접을 무난하게 합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끝내 물 먹었다. 나에게 자료를 요청했던 회사에 최종탈락했다. 만약 내가 면접장에서 ‘제가 블로그에 쓴 트레이드마케팅 글을 귀사의 교육자료로 쓰고 싶다며 연락해온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업무에 대해 정리한 글을 썼더니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로부터 연락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더불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가 정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트레이드마케팅 업무 관련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도 그 업무에 대해 조금 정리되었다.



생각보다 우리가 가진 힘은 크다. 자기 비하가 심한 나이지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 나를 왜 비하하지'라는 물음에 조금 답을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자신이 가진 경험이 비록 쓸모없다고 여겨지더라도 누군가에게 쓸모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소중하지 않는 경험이 없다. 만약 트레이드마케팅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이따끔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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