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Mar 22. 2021

숨은 영웅

잔혹한 뉴스,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뉴스를 볼 때 세상이 왜 이리 변했나 싶지만 그전에도 있었고, 그 옛날에도 있었다. 다만 그 당시는 뉴스나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일이 덜했을 것이며, 국민들이 다양한 소식을 시시각각으로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가 점점 잔인해지고,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장면들이 서슴없이 노출되는 장면을 보면서 청소년 아동들이 배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로 대략 오후 6시 저녁이면 만화 방송을 해 “달려라 하니, 둘리, 스머프, 머털도사, 무우도사 배추도사 나오는 만화" 등 다양한 만화를 즐겼다. 요즘 저녁 시간 때에 유선방송이나 특정채널 TV 상품을 제외한 공영방송에서 아이들을 위한 만화 방송을 찾아볼 수 없다. 또 일 년에 한 번 방영되던 창작동요제도 볼 수 없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인지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방송사가 많지 않아 아쉽다.


공영방송 KBS 수신료를 내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봤다. 내가   것인지 모르겠지만 찾아볼  없다. 연애인 자녀들이 나오는 예능은 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글쎄다. EBS 프로그램에 의지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방송사들이 방송사의 이익에만 급급해하며 운영하는 모습으로 비쳐 씁쓸하다.     



드라마의 잔혹성, 사회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섬뜩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뉴스 보도야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전하기에 바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점점 세상이 무서워지고 있는 것 같아 무섭다. 미담이 보도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세상이 각박해지고, 냉정해지고, 냉혹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비록 세상이 험난하게 변해가고 있다고 느끼는 현실 속에서도 선한 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어 아직 살아갈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주 1회, 2회 정도 약수터로 물 뜨러 다닌다. 물을 뜨러 가면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어르신이 있다. 할아버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약수터 주변의 낙엽을 줍고, 죽은 나무를 주워 한 곳에 쌓아둔다. 국립공원이다. 할아버지의 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지런히 약수터 주변 환경을 정리하신다.   

   

주말, 약수터에서 어김없이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비가 오다가 우박인지 눈인지 내리기를 몇 번인가 변덕을 부리는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깡마른 몸으로 가방을 둘러업고 주변 낙엽을 정리하셨다. 머리가 온통 젖어있어 감기 걸릴 수 있다고 그만하시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낙엽을 정리하셨다. 혹여나 감기에 걸리지 않으실까 걱정된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삶의 철학이 정립되어 있는 것 같다. 약수터의 물병을 채워가는 것도 항상 2~3병이다. 그 이상을 넘지 않으신다. 1인당 5병 이내로 하라고 하지만 한 번에 그 이상 물을 채워가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속 할아버지는 정도를 지킨다.     



국립공원에서 낙엽을 줍는다고, 길을 정리한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자연의 물을 얻어가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약수터 주변 환경을 지키고, 정리하시는 것은 아닌지. 할아버지는 누가 보든, 보지 않던 자신 해오던 행동을 꾸준히 실천하신다.     





할아버지가 소실된 길에 돌을 쌓아놓은 모습

몇 년 전 비가 자주 내리던 여름, 약수터로 가는 길 일부가 소실되었다. 좀 불편하다 정도이지 많은 사람이 소실된 길을 신경 쓰지 않았고, 국립공원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국립공원에서는 아마 길이 소실되었는지 알지 못했을 듯하다. 그 장소를 자주 다녀보지 않는 이상 몰랐을 것이다.      


자주 다니는 사람들만이 변화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가령 알았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립공원 직원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달랐다.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는 소실된 길이 있는 장소에 하나씩 돌을 주워서 쌓기 시작했다.      


깡마른 체구, 작은 키의 할아버지는 돌을 하나, 둘 옮겨 소실된 길을 메꾸기 시작했다. 소실된 길은 평상시에는 물이 말라 물이 흐르지 않지만, 비가 오면 물이 흐르는 길이다. 소실된 길은 물에 빠지지 않도록 가로질러 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길이다. 길이 소실되어 좁아지고, 가지런하지 못해졌고, 바위가 많고, 험난했다. 그런 상황에 돌을 들고 옮기는 할아버지가 위태로워 보였다. 안 했으면 했다. 혹시라도 다칠까 봐 걱정됐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묵묵히 돌을 하나둘 쌓기 시작해 길을 복구하셨다. 기존보다 넓게.      



할아버지를 보면서 국립공원에 말해 복구해도 되고 소실된 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할아버지가 나서서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숨은 영웅이구나, 진정한 숨은 영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편안하게 해주는 일에 서슴지 않고 나서는 모습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궂은일,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일, 하지 않아도 국립공원에서 해야 되는 일임에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한 어르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저리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자신이 없다.


할아버지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이런 숨은 영웅들이 있어 이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이용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탐욕과 거짓된 행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적나라게 드러나는 행태를 보며 사악한 인간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이 망했으면 좋겠다. 거짓과 탐욕을 일삼는 사람보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들이 오는 세상이길 간절히 바란다.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오만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이해타산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내겐 더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할아버지처럼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국립공원에서 할아버지에게 상 안주시나.

말도 없고, 조용하신 할아버지가 얼마 전 인사하니 "안녕"이라고 말하신다. 괜히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열한 아르바이트 경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