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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an 30. 2021

“저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챙겨보았었는데 최근에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보며 훈훈한 감동이 밀려와 안 챙겨볼 수 없었다. 힘들때 힘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따금 나약해진 나를 일으켜 세운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 모습이 사라지는 듯해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보다 소위 상류층, 엘리트층 아니면 돈을 번 사람이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러 나오는 듯한 진한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더 그립다. 코로나 19로 그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는 점은 이해하지만, 시작 당시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많이 달라지고 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외치던 사람이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물질 만능주의, 자본주의를 숭상하고, 그들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아쉬움과 실망이 커졌다. 나 또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러나 그 돈벌이가 결코 만만하거나 쉽지 않다는 것을 처절하게 겪고 있다. 돈이 없으면 패배자이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 같아 실망하게 된다. 돈이 없다고 게으르지 않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정직하고 성실하다고 보상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아차렸다.


           



Photo by Jonas Koel on Unsplash


그렇게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았다가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가 수의사 선생님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와 보게 되었다. 나에게 대동물 수의사는 어릴 적 자주 본 분이지만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수의사 선생님의 생각이나 마음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집중에서 봤다. 소를 보시는 분의 정확한 명칭이 "대동물 수의사"라는 것도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뷰 중    

 

‘소가 저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라는 답변을 하셨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진심이시구나,  진심이 나에게 느껴지는구나. 당신 덕분에 우리 소들도  살았던 것이구나 하면서 그의 노고에 깊이 감사했다.            




   



어릴 적 집에서 토끼, 닭을 키웠지만 오래 키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흐릿한 기억이지만 소 한 마리가 집에 왔다. 그렇게 우리 집은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소를 키우면서 점점 소가 많아졌다. 그 많아졌던 소를 대신 팔아주겠다며 가져가 팔고, 그 판 돈을 떼먹고 도망간 놈이 있었다. 그 상처로 엄마는 소를 많이 키우지 않으셨다. 어쨌거나 꽤 오래 소를 키우면서 살았던 나는 수의사 선생님의 인터뷰가 낯설지 않았다.           


외양간을 탈출한 소를 몬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소 밥을 챙겨주기 위해 벼 수확이 끝나고 논에 말려놓은 볏짚을 리어카에 싣고 나르는 일은 매년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뭐 나야 어린이로 조금 하는 척하다가 볏짚에 대자로 누워 안 한다고 떼쓰기 일쑤였다. 부모님이 외양간을 아침, 저녁으로 치우지만 가끔 일이 생기면 어린 내가 삽을 들고 소 외양간을 치웠다. 그러고 보니 소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겠다고 부모님 따라 낫질을 하다가 무릎 아래 중간 부위를 낫질하여 뼈까지 보이며 피를 철철 흘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던 적도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축산업으로 키우는 게 소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또한 먹고살기 위해 소를 키웠다. 하지만 키울 때 애정이 많이 간다. 조금이라도 설사를 하면 걱정이 앞서 수의사 선생님에게 연락을 취하고,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였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다.

함께 살았던 공간에서 한 마리가 팔려나가면 소들도 자신들의 상황을 다 알고 있다. 팔려나가는 소는 차를 안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팔려나가지 않는 소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하루 이틀 며칠을 운다. 어린이였던 나 역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일까 나는 되도록 소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큰 눈망울을 바라볼 때면 가끔 드넓은 초원에서 자라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현실에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소가 팔려나갈 때 “왜 파냐고” 떼를 썼지만 가난한 살림에 생계를 위해 키우는 것이라 부모님을 끝까지 붙들고 뭐라 할 수 없었다. 소가 새끼를 낳기 위해 힘들어하면 엄마 역시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새끼가 태어나면 마른 수건을 가져가 젖은 새끼를 닦아주고, 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일어서는 것까지 보시고 안심하셨다.      




방송에 출연한 수의사 선생님에게도 많은 사람이 전화하는 듯하다. 우리 역시 수의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자주 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수의사 선생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말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전화를 드렸던 우리처럼 소를 키우는 사람은 우리처럼 전화할 것이고, 그렇게 수의사 선생님은 뿌리치지 못하고 차에 온갖 장비를 싣고 달려갈 거다. 나는 기억한다. 그 당시 수의사 선생님의 열정을.      



방송에서 수의사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당신이 있었기에, 당신이 그 자리를 지켜줬기에 소도, 소를 키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전국에 대동물 수의사가 1,000명도 안 된다는 말에 가슴 아팠다. 1명의 수의사가 얼마나 많은 소를 진찰하고 관리할까 싶어 안쓰러웠다. 많은 사람이 있지 않기에 쉴 수조차 없을 것이다. 당장 소가 아프면 소도 힘들지만, 소를 키우는 사람도 걱정에 밤 한숨 못 잔다. 그런 것을 수의사 선생님들은 모른 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수의사 선생님은 항상 변함이 없었고, 찾아와주셨다. 아마 많은 수의사 선생님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전국의 대동물 수의사 선생님!!

다시 한번 진심으로 당신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 역시 방송에 출연한 대동물 수의사 선생님처럼 어딘가, 누군가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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