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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09. 2021

살아줘서 고맙다

그립고, 보고 싶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5년을 봐 왔다. 한동안 가지 못하다가 갔더니,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에 가면 볼까 했는데 다시 보이지 않았다. 걱정됐다. 결국 죽은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산이 가까워 수시로 간다. 정상은 거의 가지 않고, 약수를 뜨러 가거나, 천천히 산의 중턱까지만 운동 삼아 다닌다. 산에 있는 공방 근처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그들을 만났다. 늘 같이 다녔다. 한 마리는 산에 사는 길고양이 같지 않고, 애교가 넘치는 녀석이었다. 가까이 가면 내 곁으로 다가와 부비부비를 하거나, 배를 하늘로 보이며 드러누웠다. 다른 한 마리는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며, 조심성이 강한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애교 많은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함께하던 그 자리가 쓸쓸해 보였다. 내가 다가가도 한동안 오지 않고 누워 있는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파 죽은 것 같다. 그렇게 살아남은 한 마리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외로웠을까, 경계심 많던 녀석은 나에게 발을 살짝 주는 정도까지는 오기 시작했다. 내가 산에 올라가면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졸졸 따라왔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녀석이었다. 나 혼자만 짝사랑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곁을 내주지 않아도, 산에 사는 여러 고양이 중 그 녀석이 제일 눈에 밟혔다. 친구를 잃는 그 녀석이 내 눈엣가시였다. 산에 갈 때면, 그 녀석이 출몰하는 장소 이곳저곳을 두루두루 살폈다.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죽었구나라는 결론을 지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 녀석을 공원에서 만났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정말 그 녀석이었다. 저녁에 잠을 못 자, 피곤하고 멍한 상태에 두통까지 와 택배를 부치러 나갔다가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원 운동기구 있는 장소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으려 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야옹, 야옹” 하는 것 아닌가. 가방에 있던 쥐포를 살짝 뜯어 혹시 먹을까 싶어 줬지만 전혀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 서성거렸다. 가만히 살펴보니, 귀가 살짝 잘려 있는 모양과 얼굴을 보니 사라진 그 녀석과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그 녀석의 발에 손을 내밀었더니 살짝 빼는 행동도 비슷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흡사 그 녀석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급히 예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핸드폰에서 찾기 시작했고, 찾은 사진을 현재 내 앞에 있는 그 녀석과 비교하니 똑같았다. 행복했다.      



그 녀석이 살아있었다. 그 녀석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내 곁으로 온 것은 아닐까 혼자 상상을 하며, 엄마에게 말했더니, “고양이가 뭘 알겠니”라며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나를 알아봤다고. ‘나 살아 있어요’라고 알려주고 싶어 내 곁으로 왔다고. 또다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불면증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은 오늘, 그 녀석이 나에게 왔고, 나에게 ‘힘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든 게 잘 될 거야, 나도 살아있잖아,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을 건네주는 듯하다. 이젠 그 녀석을 보러 일부러 공원을 자주 갈 내가 그려진다. 죽었을 거라 단정 지었는데 살아줘서 고맙다. 길 위의 삶이 험하고, 친구도 잃어 외롭고 쓸쓸할 텐데도, 여전히 삶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있는 너를 보면서 나도 조금 더 용기 내 살아볼 의지가 생기는구나.


너와 같이 살고 싶지만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어, 그저 너를 자주 보러가 말동무해줄게. 그것밖에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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