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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11. 2019

처음부터 너무 달리지 마

인생은 마라톤이다


Photo by Seth Doyle on Unsplash


한 학년이 1반 밖에 없는 시골 학교를 다녔다. 운동을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거나 특별하게 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 대표로 나가는 아이 중 하나였다. 마흔 명 정도의 학생 중 그나마 잘 달리기는 아이에 속해 학교 대표로 몇 번 출전했다. 단거리, 장거리 대표로 말고 계주만 나갔다. 육상대회에서 욕을 먹는 아이였다. 코너를 돌다가 넘어지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잘못 넘겨주는 등 나 때문에 순위가 밀려났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도 너무 바보 같아 난감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조그만 시골 학교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종종 대표로 달리기를 뛰었다. 1등을 했는지, 꼴찌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오래 달리기 할 때는 분명 1등 을 한 적이 없다. 초장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전력 질주했다. 처음부터 승부수를 보려는 마음에 급하게 달리다 보면, 숨은 금방 찼고 급기야 거의 걸음마 수준으로 골인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경험하고서도 중학교 체력 테스트 중 오래 달리기에서도 뛰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처음부터 냅다 달렸다. 처음부터 힘을 쏟으면 결국 힘이 빠져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반에 전력 질주했다.     


 

처음 1~2등을 달릴 때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것도잠시. 뒤에서 달려오던 친구가 나를 앞질러 달려갈 것 같은 두려움에 앞, 뒤 모두 신경 쓰느라 초조하고 불안했다. 초조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으로 질주하다 보면 급격히 숨이 가쁘고, 체력소모는 점점 심해져 온다. 하나둘 나를 스쳐 앞질러 간다. 결국 나는 걸어서 들어온다. 이것이 내가 뛰는 오래 달리기 방식이었다. 당시에도 그 방법이 맞는 것이라며 착각했다. 나에게서 있어서 말이다. 어린 나이에 뭐 알겠느냐만은. 허나 이런 방식의 달리기는 대학시절 마라톤 대회 출전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Photo by Ivana Cajina on Unsplash


대학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다. 그래서 언제나 바쁘고, 언제나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에게 적은 시간 투자하고 돈이 생길 기회를 마다할 리 없었다. 일 년 한 번 정도 학교에서 마라톤 대회를 주최했다. 1등에서 3등까지 상장과 상금이 있었고, 생활비를 벌 기회라고 생각하며 주저 없이 출전했었다.


10km를 달렸다. 출전 전 교내 많은 사람이 마라톤에 관심 없고, 여자들은 더 마라톤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참여했다. 상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점을 노렸다.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나는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나는 처음부터 전력 질주하는 바람에 마지막에서 걷다시피 결승점을 통과하고 겨우겨우 상금을 탈 수 있었다. 내 뒤에 오던 사람 중 페이스 조절을 잘하는 사람은 끝까지 그렇게 유지하다가 나를 따라잡고, 결국 결승점에 골인했다.



어느 해에는 산악 마라톤 대회로 바꿔 진행했는데 이때 역시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뛰었다. 쉽게 다리가 풀려 천천히 가는데 뒤에서 한 명이 치고 올라오고, 또 다른 한 명이 추월하면서 나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풀코스가 아닌 하프 코스로 끝마치기로 정했다. 결과는 하프코스는 1등이었다. 하지만 상금을 받으면서 씁쓸했다. 나의 결정에 스스로를 책망했다.


산악부는 대회 참여만 있을 뿐 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회였는데 내 앞을 앞질러 간 사람 모두는 산악부였던 것이었다. 페이스 조절을 못해 혼자 두려워하며, 하프 코스로 끊어야 그나마 상금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 대회에 잔머리 굴리다 못해, 페이스 조절까지 못 해 이뤄진 결과에 나 자신도 웃겼다. 한참을 같이 참여한 사람들과 웃었다.  




        





처음부터 너무 달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 달리기와 마라톤에서 내가 겪은 경험과 그간의 경험을 통해 처음부터 너무 달리다 보며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페이스 조절을 하다 보면 늦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자신의 가고 자하는 길을 오랫동안 꾸준히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십 대 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노력 대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에 항시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거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했기에 더더욱 처음부터 승부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은 허다했다. 자주 흔들리고, 부러지고, 꺾였다. 더 아등바등거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달리지도 말고, 뚝심 있게 페이스 조절하면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는다. 깨닫는 것을 잘 실천할 수 있을까?



해보자. 그래 가보자. 적당한 속도, 적당한 발걸음, 적당한 무게로 처음부터 너무 애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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