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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23. 2021

다시 볼 날을 그리며

독서, 여행 외에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하는 유일한 투자이며, 이따금 즐기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의 관람이다. 어릴 적 가난으로 풍족하지 못해 다양한 것을 누릴 수 없었고,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빡빡하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것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돈이 생길 때면, 보고 싶은 공연에 과감하게 예약하고 즐겼다. 아깝지 않았다. 그것으로 나의 고달프고, 피곤한 삶이 한동안 씻겨 내린 듯했다. 조금 여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안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딱딱해지고, 누구에게 마음을 열어줄 상황도 되지 않았다. 사회를 향해 불만이 쌓이고, 분노가 쌓이고, 부모를 잘 만나 공부만 할 수 있는 친구를 그저 부러워했고 질투도 났다. 하루를 거의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생활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문득문득 찾아왔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문화생활을 이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았다.


무료한 삶에 잠시 벗어나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그 시간 동안은 걱정과 근심은 내려놓고, 오로지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아마 내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목청을 높였던 때는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나왔을 때다.


평소 목청이 커 자주 주위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혼나는 일은 많았고, 수업 시간에 잘 떠들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간혹 친구가 말 걸어 답하다가, 여러 번 걸려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나의 목소리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내 목소리에 늘 자신 없어했고, 의기소침했었다. 사람들은 내가 눈치를 안 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치를 많이 봤다. 평소 목소리에 계속 신경 쓸 수 없으니, 나도 모르게 커지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곤 했는데 그럴때 사람들이 치고 들어왔다. 나도 내 목소리가 이미 커지고 나서야 자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내가 나도 싫었다.


그런 내가 목청을 맘껏 지를 수 있었던 뮤지컬 커튼콜 시간은 배우들을 향해 좋은 공연을 보여줬던 감사와 응원의 박수이기도하면서 어쩌면 나에게도 보내는 응원의 박수이기도했다. 그렇게 나는 뮤지컬에 매료되었다.      




2005년 '오페라 유령' 오리지널 내한 공연을 봤을 때, 그 이전에 봤던 그 어떤 공연보다도 나를 사로잡았다. 비싼 공연을 선뜻 예약할 정도로 배포가 크지 않았고, 좋은 좌석을 예약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아, 1층 맨 끝 오른쪽 코너로 예약하고 봤지만, 무대의 웅장함과 배우들의 열연이 1층 구석을 결코 초라하게 만들지 않았다. 전율을 느꼈다. 기존의 무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점점 사회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 한 번씩 뮤지컬을 보려 갔고, 스트레스도 풀었다.


그렇게 뮤지컬을 사랑하는 나는, 2017 12 빌리 엘리어트를 관람 이후로 지금까지 뮤지컬을 관람하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경제적 상황이 여의찮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올해 다시 공연하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싶다.  인생 최고의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이다. 회사 후배로부터 우연히 영화를 소개받아  번이나 봤다. 그렇게 빌리 엘리어트와 사랑에 빠졌다.  친구 덕에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을 2010, 2017  번이나 봤다.


자주 하지 않는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의 영화 소개가 없었다면, 단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올해나 내년 어떻게 해서든 꼭 보고 싶다. 두 번 공연 모두 혼자 갔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엄마와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칠십이 넘은 엄마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나만 경험했으니 미안함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니, 그렇게 간절히 빌어보련다. 나에게 숨 쉴 시간을 주는 뮤지컬을 다시 볼 날을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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