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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23. 2021

꼭 가성이어야만 했니

평소 음악을 즐기는 편이다. 이십 대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발라드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노래를 부르며, 한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없었다. 노래방 사장이 시간을 연장해주기를 은근슬쩍 바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추가로 준 시간까지도 다 쓰고, 노래방을 나와야 후련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아 어쩌지 못할 때, 노래방을 찾았다. 술 한잔이라도 먹고 풀고 싶어도, 술을 먹지 못하니 술로 풀 수도 없었을 때나 친구를 당장 불러낼 수도 없을 때, 나는 혼자 노래방에 가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혼자 가끔 노래방을 가도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게 주인에게 원래 예약 시간보다 더 달라고 졸랐다. 정말 시간을 다 채워 부를지 의심의 눈초리를 나에게 주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로 준 시간마저 다 부르고 나왔다. 노래방 문을 박차고 나올 때, 가게 주인의 얼굴을 보면, 살짝 놀란 눈치였다. 당시 혼자 노래방에 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분위기이라, 그런 분위기 속 '애는 무슨 용기로 왔나' 싶어 바라봤을 것 같다. 그 당시 오락실은 혼자서도 많이들 가는 편이었지만, 여자 혼자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둡고, 침침하고, 막혀있는 공간이지만, 있는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묵혔던 갈증이 해소됐고, 막혔던 가슴이 뚫렸다. 그렇게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나는 완전한 음치는 아니지만, 그저 즐기는 정도 수준이다. 그런 내가 한때 기죽고, 의기소침해져 어깨가 자꾸만 작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가곡 위주로 음악을 배웠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노래를 배우는 것까지는 좋은데, 진성이 아닌 가성으로 가곡을 부르게 하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한 데, 가성까지 내지 못하는 터라 음악 시간 50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목소리가 크니, 진성으로 부르면 한 번에 들통 나 버리기 때문에, 음악 시간에 대부분 입만 벌렸다가 닫는 모양새만 취할 뿐이었다.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뻐끔했다.      


그런데 음악 선생님은 다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어딘가 틀린 부분이 나오면, 그게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멈추고 나를 봤다. 어쩔 때는 나를 보며, 틀린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억울했다. 입만 뻐끔뻐끔하는데, 도대체 왜 나를 보고 틀린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지, 창피했다. 더욱 움츠려 들었다. 그런 음악 시간이 재미없었다. 정작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데, 여러 명 앞에 자주 불리는 상황이 몹시도 언짢았다.     


가곡을 꼭 가성으로만 불러야 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 실기 시험도 가성으로 봐야 해 힘들었다. 진성으로 부르다가 결국 올라가지도 못하고 시험을 종료했다. 가곡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알려주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음악 수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은 여전히 든다. 교내 합창대회 때, 맨 뒷줄에 서서 친구들의 손을 잡고 입 모양만 냈던 적도 있다. 그런 음악시간이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찾아오지 않아 다행이다.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쌓이면 오백 원 동전을 넣고 마음껏 진성으로 목청을 높였던 오락실의 작은 공간이, 나는 더 행복했다. 가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든 사람도 있는데, 무조건 가성으로 목소리를 내야만 했던 음악시간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노래를 좀 못 부르면 어때라고 가볍게 흘러 넘기고, 그저 부르고 싶은 대로 흥에 겨워 부르면 그만이지 싶다.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게 나는 나의 방식대로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고 싶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의 '우울한 빵집옆 음반가게'를 틀어나야겠다. 그리고 얼마 전 오래전 제주에서 찾아뵈었던 래퍼분이 추천해준 악동클럽 노래도 반복해서 들어야겠다. 오늘 하루는 내 스타일대로 음악을 즐기는 거야. '야호,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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