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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26. 2021

내 곁으로 날아든 밤바다

차가 없어도 방랑벽이 있는 나는 때때로 버스를 타고 산이나 관광지를 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훌쩍 기차 타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다. 자동차가 없어도 돌아다녔던 내가, 싸구려 자동차가 생기면서 방랑벽은  주체를 하지  했다. 떠나고 싶으면, 바로 떠났다. 지금은 자동차가 없어 뚜벅이 신세라 자주 여행을  가지만, 한참 운전했던  년간은 내키는 대로 여행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절이 호시절이었다. 여행 부자였다. 많은 것을 소유한 여행도 아니지만, 싸구려 자동차가 나를 우리나라 여러 도시와 마을로 데려다주었다. 쓸쓸해도 적적해도 그것은 잠시고, 혼자여도 충분히 넉넉하고 행복한 여행들이었다.     


혼자 자동차를 끌고 여행하면 좋은 점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틀어놓고, 크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람을 쐬고 싶으면 언제든 창문을 열어 바람을 가르며 운전할 수 있고, 거기에다 좋아하는 음악까지 틀고 따라 부르는 맛을 알면 헤어날 수 없다.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그 맛이 더 맛나다. 여행할 때 맛집보다 관광지와 자연경관을 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 밥때를 놓치는 일도 많고, 간단하게 넘기는 경우도 많다. 맛집을 검색하고 찾아다니는 시간보다 생각지도 못한 경치나 풍경을 만나 쉬어가며 누릴 수 있는 그 시간이 내겐 더 인생의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자동차로 산으로, 관광지로, 바다로 여행을 다녔다.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제약이 많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하지 않고 다니는 편이라 자동차 여행이 조금 더 맞는 편이다.   

        



어느 날, 이른 저녁 친한 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얼굴 한번 보자고 해, 저녁쯤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서 만났다.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갑작스럽게 바다 보러 가기로 했다. 평소 만나면 티격태격했는데, 여행에 있어서는 궁합이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정동진으로 향했다. 내 차는 세워두고, 언니 자가용으로 바로 고속도로에 진입해 출발했고, 깊은 밤 정동진 바다에 도착했다.     


달빛도, 별빛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우리처럼 바다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를 거닐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도 그들처럼 정동진 바다를 걸었다. 바다를 보며 그날 엄청난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언니는 스트레스를 던쳐버렸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 뒤돌아서는데 바다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주 보는 부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호기심으로 부스로 들어가 사주를 봤다. 그때 무슨 말을 내게 해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다 그날 처음으로 들켜버렸다. 서로 아는 사람이라 감췄지만 솔직하게 풀어낸 밤이고, 언니는 언니의 고민을 풀어냈던 밤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다로 갔지만 우리는 그 바다에서 우리가 짊어진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지금은 서로 한바탕 심하게 싸우고 연락을 끊었지만, 그렇다고 그 추억까지 나쁘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인연이 오고, 가고 하는 일련의 상황 속에 나를 떠난 인연에 대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마흔이 넘으면서 조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만약 떠나갔던 인연이 다시 내게 온다면 다시 만나면 된다.     


그렇게 정동진 바다는 나도 그 언니도 품어준 어머니였다. 깊은 밤바다는 숨을 쉬었고, 나는 바다의 숨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철렁거리던 정동진의 밤바다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정동진을 모두 친구랑 갔다 왔구나, 앞으로 친구랑 갈 수 있을 날이 오기는 올까. 떠나고 싶다. 정동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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