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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종 안했으면, 출입 금지!

소설: 블랙 백신

by 민 켄

잿빛 하늘에 후덥지근한 어느 초여름 오후. 뉴욕시 퀸즈 우드사이드역 근처의 기차길은 어두웠다. 그곳은 바로 내 집 가까이 지나는 철로다. 늦은 오후 롱아일랜드행 기차가 지나고 있었다. 기차 차량의 개수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덟개. 어, 여덟칸. 왜 여덟칸 밖에 되지 않을까? 평소에는 열두칸 쯤 되었던 것 같은데.. 코로나 감염 때문에 승객이 탑승을 우려해 기차 차량이 줄어든 거겠지. 흠, 앞으로도 지나가는 기차의 칸수를 세워보자. 감염 위험성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겠지..


조금 더 걷는다. 집에만 틀어박혀 답답했다. 동네 인도를 천천히 걷던중 눈에 들어온 쥐색 계통의 어두운 건물. 단층 건물 바깥 벽에 두꺼운 비닐을 붙어있는데 ‘피트니스 센터, 개인 교습’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짙은 곤색 배경에 하얀색 글자체로 가로 1.5미터 세로 1미터쯤 되어 보였다. 피트니스가 바로 집 가까이 있다니? 개인 교습? 흠.. 잘 됐네.


그러지 않아도 팬데믹이 가져다준 ‘방콕’ 생활인데. 한달에 얼마씩 낼까?’ 나는 조금 열려있는 피트니스 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실내에는 대여섯명 정도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충 훑어본 실내는 40평이 갓 넘어보인다. 오래된 빨간 내부 벽돌에 덧칠을 해서인지 검은 황색 상태였다. 실내에는 역기가 설치된 벤치, 웨이트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하는 트레드밀도 4대가 문 바로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좀 오래된 운동기구들로 보였다. 피트니스 관장이 다른 곳에서 운영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나 보지.. 관장이나 피트니스 직원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부를 더 훑어 보려고 서너 발걸음을 뗐을까, 누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나를 향한 소리 같아 주춤 거리며, 소리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팔 차림에 가슴 근육이 보이는, 얼굴이 좀 거칠어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다. 40세 중반에 화난 표정의 구릿빛 얼굴이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무슨 소린지 처음에 몰랐다, 거친 소리 때문이었을까. 두번째 소리 지른 내용이 마스크를 쓰라는 말인 것 같았다. 그의 거칠고 화난 모습에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주눅이 들지 않은 차분한 모습인 척하면서, 천천히 두세 발자국 뒤로 갔다. 거칠고 분노를 띤 모습 때문인지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라고 반발하기엔 좀 두려웠다.


그 옆에 있던 어떤 사내가 나에게 바깥으로 나가자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좀 부드러워 보였다. 체육관 매니저 인가? 40대 후반의 그 남성을 따라 체육관 바깥으로 나갔다. “왜 저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거지?” 나는 물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당신이 코로나 접종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잖아?. 감염 될까 우려된 거지. 당연히 당신이 마스크를 썼어야지!” 강한 목소리지만 절제하려는 투의 목소리 였다. 음, 내가 동양인인데다 화가 난 그 고객 입장에서 말하고 싶었겠지만 동시에 내가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의도 때문인지 절제하려는 목소리였다. 아니면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인가?

그의 말에 아차 싶었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안쓴 내게 소리지르던 사내와 나와의 거리는 2미터는 족히 되었는데 나는 모기소리 만한 소리로 체육관 매니저에게 “그 사람하고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고 말하고는 얼른 월 회비를 물어보았다. “매월 250달러!”

너무 비싸다는 내말에 매니저는 “너의 건강 가치는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아니?” 물어온다. 순간적으로 그럴싸한 말이네 느껴지면서 ‘논리가 약한 사람이네’라는 생각도 스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체육관에 비해 비싸다”고 얼른 말하고는 “땡큐”라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 에이! 팬데믹이라 통 운동을 못하는 차에 집 바로 가까이 피트니스가 생겼는데.. 근데 회비는 비싸고, 그런데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운동할 수도 없고,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구.. 아, 그렇지, 이젠 뉴욕시 피트니스에 갈수가 없구나. 투덜 거리면서 앞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슬며시 화가 올라왔다.. 아니, 그 사내가 성질을 그렇게 낼 것 까지야 없지 않은가? 허지만 가만히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되네. 인터넷으로 읽는 한국의 신문에 나지 않았던가. 감염자가 감염 이유를 도통 알수가 없었는데,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마스크를 안쓰고 지나간 것도 원인일 수 있다는 기사 보도.. 그렇지 나도 인도를 걷다가 보행자와 마주칠 일이 있으면 살짝 옆 도로로 비켰다가 다시 인도로 되돌아오지 않는가? 어느날 마주오던 금발의 어떤 미국인 젊은 여성이 나의 행동에 “땡큐”라고 하지 않았던가!.

팬데믹 전엔 나는 가끔 가족과 식당에 가곤 했다. 한인 식당이 많은 퀸즈 플러싱은 물론 주말에도 친척이 있는 뉴저지 팰리세이즈 파크의 브로드 애비뉴 선상의 한인 식당을 찾아, 냉면을 자주 먹었다. 아내는 부모가 평안도 출신이셔서 그런지 비빔 냉면, 나는 경상도 부모 습성을 따라 물냉면을 시킨다. 올해 봄에 대학을 졸업한 내 아들은 만두 킬러.


그러나 이젠 뉴욕시 모든 식당이 백신 접종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이제 외식을 단념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답답했다. 아, 식당, 체육관, 그리고 상영 중에 이따금 졸기는 했지만 가끔 가던 영화관… 대중 실내 시설은 백신 접종서 없이 못들어가네. 아, 이제 그곳들도 그리운 옛날이 되어버렸나!’


내 직장은 주 5일 근무인데 하이브리드로 바뀌었다. 이틀 사무실 출근, 사흘은 재택 근무로. 그 이후 1주일이 지났을까? 평소 조용한 직장 상사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미스터 장, 백신 맞았나요?” 그는 내가 미접종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물어보았다. 왜 물어볼까? “아직 안 맞았지만, 가족과 곧 함께 맞을 겁니다” 마치 조만간 맞을 듯이 말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2개월전 내가 백신 접종 한다며 하루 병가 신청을 했던 적을. 물론 평소 혈관 기저 질환이 있어 접종하기에 부담이 좀 있었다. 그래도 접종하려던 나에게 난데 없이, 아들이 접종을 반대하는 거 였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 적극적으로 말렸다. “아빠, 백신이 급하게 만들어졌어. 특이한 mRNA 방식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제조 방식의 메커니즘은 잘 몰랐지만, 평소 또박또박 말도 잘하고, 논리적인데다 젊은이 답지 않게 건강 상식이 풍부한 아들과 말다툼 하기 싫어 “알겠다”고 우선 한발 물러났다. 그 직장 상사에게는 “사정이 생겼다”고 하루 병가 취소를 알리고 백신 접종을 늦쳤던 것이다. 좀 시간이 지나서, 가족과 함께 맞으면 되겠지..


사무실로 출근하던 다음날 금요일, 업무 연락 때문에 옆방 다른 부서에 갔더니, 상사가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다른 부서 상사였는데, 내가 방을 나올 즈음 갑자기, 내게 “백신을 맞았나요?”고 물어보았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아직 안 맞았어요.” 그러나 얼른 대안을 제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족과 함께 맞을 겁니다” 얼른 얼버무렸다.


그 부서장은 우리 부서장보다 영향력이 큰 상사였다. 그 부서장은 한달전쯤 우리 부서장에게 부서끼리 점심 식사를 하자고 권유했단다. 그러나 내 부서 책임자가, “미스터 장은 아직 접종하지 않았어요. 조금 지나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지요”라고 적당히 넘겼다고 내게 전해주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불안했다. 내가 접종 안한 유일한 사무실 직원인 것이 점점 알려지고, 또 접종 압력이 계속 들어올 텐데. 맨해튼 미드타운 소재 직원 30명되는 한인 회사인데 직장 생활이 점점 힘들어 지지 않을까, 막연하지만 어떤 불안감이 올라오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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