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했던 2차 초시
수험일기라는 제목이 무색하도록 1년간 단 한 번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글을 쓸 때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무작정 일기 쓰듯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똑똑똑 물이 고여 적당히 차올랐을 때야 비로소 컴퓨터 앞에 앉곤 했다.
마흔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수험이기도 했고 법과 논리라는 틀은 감성과는 접점이 별로 없는 영역이기도 해서 공부를 하는 동안은 좀처럼 감성의 세계로 넘어오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똑똑똑 뭔가가 가끔 떨어지긴 해도 그것이 찰랑찰랑 고일 때까지 감성에 젖는다는 것은 바로 수험의 실패와 가까워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1년이 금세 그렇게 흘러버렸다.
아쉬웠던 지난 1차의 패배를 발판 삼아 올해 5월엔 충분한 고득점으로 1차를 합격했다.
그러나 1차 합격의 기쁨을 누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난해의 쓰디쓴 경험 때문에 1차 준비에 난이도 이상의 과투입을 했고 상대적으로 2차 준비가 소홀했던 탓이다.
'공인노무사 시험은 8대 전문직 시험 중 가장 낮은 난이도라 너도 나도 몰려든다'는 인식이 퍼져있었지만 지난해부터 그런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과목당 25문제가 40문제가 되고 기출문제만 풀어서는 합격할 수 없는 시험으로 돌변했다.
올해의 체감 난이도는.. 지난해 보다 조금 괜찮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40%가 넘는 인원이 합격하여 2차 시험에 초 역대급 인원이 몰렸다.
평소 식당을 가도 사람을 잘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수험판에서까지 이럴 줄이야..;;;
최종 6천 명가량이 2차 시험에 접수했고 빡쎈 서술형으로 치러지는 시험을 채점하기 위해서라도 난이도는 분명 평이하진 않을 듯 짐작됐다.
1차에 힘을 과하게 쏟았고, 2차까지 90여 일이 남은 상황.. 어쩐지 올해는 희망을 걸어보긴 어렵겠구나.. 하는 예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여기저기 삐거덕 대는 육신을 달래 가며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순수 12시간가량을 갈아 넣어 하루하루를 다져나갔다.
그렇지만, 결과는..
물론 결과는 11월 중순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첫날 노동법 시험을 보고 그만 중도퇴실을 선택했다.
그 짧고 긴장된 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가며 '포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올해 합격을 욕심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시험문제를 보는 순간, 그리고 몇 페이지를 바쁘게 써 내려가며 '내가 이러려고 많은 걸 포기하고 그 1년을 보냈던 것인가'하는 생각이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손목을 자꾸 잡아챘다. 타인을 배려함 없이 귀가 찢어지도록 답안지와 법전을 재껴 넘기는 양 옆의 수험생들의 태도도 그 와중에 참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총 이틀간 시험을 치러야 하는 여정의 첫날, 그 자리에 더 앉아있는 것이 스스로를 고문하는 시간들이 될 것 같아 더는 버틸 자신이, 아니 버티고 싶지 않았다는 게 정확할 듯싶다.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나의 2차 첫 초시를 끝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특히 지적인 활동에 있어 승부욕이 강한 나는 이런 일이 있으면 한동안 울고 불고 나름의 못난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리곤 했는데 이상하게 격하고 불쾌한 어떤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 끝에 치르지 못한 나머지 과목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뭐 그런 것이 마음속에 찰랑이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고 덤덤하게 식사를 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느슨한 계획들을 떠올려보았다.
뭘까.. 이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