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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Oct 08. 2019

알약 열여섯,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가장 잔인한 복수..


언젠가 심리상담을 받던 중 선생님께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앞으로 혹시나 제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면.. 저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어딘가로 숨어들어 남은 인생을 살고 쓸쓸히 죽어갈 생각입니다."


혹시나 암이 아닐까 의심되는 종양이 발견되고 수술 날짜를 잡으며 한동안 생각이 많았었다. 

그 종양이 혹시나 암이라면.. 그래서 엄청난 목돈이 들거나 혹시 더 손 쓸 수 없는 늦은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할 것인가.. 울며불며 매달려서 떼를 쓸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에 미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간단하고 심플하게 마지막을 생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하고 싶은 거군요.. 가족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상담실을 나오면서 어쩌면 선생님 말씀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잔인한 복수..

내가 사라지고 마는 일..

내가 사라지는 동안 그들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내내 자책하게 만드는 일..

가진 것이 없다고 쉽게 결론지은 심플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 생각의 뿌리엔 분명 분노의 흙이 가득 묻어있었다.


자살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주체할 수 없는 자기혐오가 아니라,

나를 해하면서까지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은 가장 잔인한 복수의 마음..


그런데 그들은 

정작 자살자가 생각하고 계획한 만큼 처절한 상처를 받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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