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 영 Oct 03. 2019

알약 열다섯,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 지금의 나였더라면.. 가지 않았을 길


오픈된 온라인 공간에 사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오픈해야 하는지.. 가끔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기도 그렇고.. 아직은 저의 과거와 생활들을 소재 삼아 글을 올리곤 하는데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 채널을 통해 스토킹 피해도 입어본 경험이 있어 가끔 멈칫거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웃 작가님의 글 한 줄을 보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가장 좋은 독자는 브런치에 있다"라고 하셨지요.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같습니다.

다른 채널에 글을 올리기 위해 컴 앞에 앉을 때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 컴 앞에 다가설 때는 마음가짐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때론 힘든 마음에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지만 보통은 떠오른 생각을 하루 이틀 사고체계에 순환시켜 결론으로 얻어진 것들을 위주로 글을 작성하곤 하죠.

많은 분들의 공감과 반응이 가장 큰 힘이 되겠지만

때론 이렇게 진솔하게 무엇을 길게 끄적일 공간이 있다는 것 만으로,

누군가가 그 긴 글을 차분히 읽어준단 사실 하나만으로,

브런치 작가는 큰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대놓고 독자분들의 위로와 격려를 갈구하고자 자판을 두드립니다.


10월 3일..

개천절이죠.

노는 날..

좋은 날..


하지만 전 이날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저만의 슬픈 마음의 의식을 치릅니다.

11년 전, 저는 이 10월 3일에 결혼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7년이 흐른 후 이혼을 했습니다.


공식적인 이혼의 사유는 남편의 병적인 퇴폐업소 출입이었죠.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빌고, 용서하고, 또다시 몰래 이어지는 그 망할 놈의 습관..

제법 긴 시간 그 생활을 이어 온 모양인데 미련 곰탱이처럼 아주 나중에야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악재는 늘 몰려다닌다고, 당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충격적이었는데 사는 집마저 깡통전세로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하실 겁니다.

물론 생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분들에 비한다면 그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지만 대범하지도 그렇다고 비상한 재주가 있지도 않았던 평범한 저로서는 정말 제정신으론 감당하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찌어찌 시간이 5년이나 흘렀고.. 그래도 지금은 그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나름 제 생활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죽으려고도 한 번 시도를 했으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커튼봉에 매단 목줄에 삶에 지치고 쩌든 목을 들이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무엇보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내 인생이 이게 끝이 아닐 텐데.. 패잔병처럼 쓰러진 몸을 줄에 매달고 삶을 정리하려는 저를 스스로 내려다보면서 이건 아니다.. 이렇게 끝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오기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용기일 수도 있겠지만 또 어쩌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한 포기였단 생각도 들어요. 절제할 수 없는 우울함으로 바닥을 치는 날엔 사실 마지막 언급한 이유가 지금 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가느다란 동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쉽게 말해 '죽지 못해 사는..', '죽을 용기도 없는..' 그런 제 자신이 한없이 비참하고 보잘것없다는 생각 속에 갇혀버리죠.


성격이나 기질적으로 우울함이 내재되어 있던 사람임은 분명 하나 결혼생활을 '실패'로 분명히 인식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우울증이 고개를 든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미루고 미뤄왔던 심리상담도, 정신과도, 항우울제도, 수면유도제도 모두 그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살려고 만나게 된 것들이니 말입니다.


우울증 환자, 우울한 사람, 창백한 여자,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등등의 꼬리표를 달고 참 오래도 살아왔는데 그래도 아직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젠 내 아팠던 과거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꺼낼 때마다 한 바가지씩 흘렸던 눈물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때 죽지 않고 살아있어 다행이다.. 그때 죽지 않았으니 오늘 이 황홀한 노을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그때 죽지 않아서 피식 웃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날들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것이고.. 다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정말 행복한 삶을 다시 생각합니다. 아니, 설령 끝까지 혼자라 할지라도 말이죠.


39세, 지금의 나였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그 길..

가만히 돌이켜보니 사실 날벼락을 맞듯 벌어진 일도 아니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그는 유사한 여자 문제로 신뢰를 깨버린 적이 여러 번 있었죠.

28세의 나는 6년을 이어온 인연을 끊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결단을 내릴 힘도, 미련으로 인한 상처를 견뎌낼 힘도 없었던 연약했던 사람..


결혼이 실패로 끝나고 제겐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결혼 경험이 없는 남자 친구가 생기면 부모님께 말하기 꺼려지는 존재, 초혼남에게 소개하긴 어쩐지 미안해지는 존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먼저 고백성사 치르듯 털어야 할 절차가 생겼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누군가는 뒤에서 수군덕거리겠지만 제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설령 그 길을 가지 않았던들 오늘 후회가 없었을까요? 다행히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혼자였다면.. '그때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았을걸..'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어찌 됐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았을 겁니다. 그것이 어떤 길이었든..


10월 3일..

제가 사는 지역은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합니다.

늘 우울하게 마음 한편이 무거웠던 날..

전 그 마음을 확 꺼내놓고 충분히 애도하렵니다.

눈물과 한숨이 아닌.. 그래.. 그런 날도 있었다.. 내가 그 날들을 그래도 무사히 잘 견뎌왔구나.. 이렇게 말이죠.

저의 결혼 실패 기념일, 함께 애도해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알약 열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