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면 늘 따라오는 숙제가 있다. 바로 아이 돌봄이다. 아이가 하원을 하고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는 누구와 있어야 할까? 결국 많은 가정에서 이 공백을 메우는 사람은 조부모다. 나 역시도 아이를 가장 사랑해 주며 안전한 곳인 조부모의 품에 맡긴다.(덕분에 집 안에 CCTV를 설치하거나 매시간 아이 상태를 확인할 필요 없이, 오로지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음)
언젠가 할세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이런 단어가 나올 만큼 아직 많은 부모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에도 여전히 조부모를 가장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언제나 '무급'으로 여겨진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중앙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 서울시 친인척 돌봄 지원, 일부 지자체의 경우에는 '조부모 돌봄 수당'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지원이 충분할까?
정부와 지자체의 조부모 돌봄 지원 제도
먼저 중앙정부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운영한다. 만 12세 이하 자녀가 있는 맞벌이·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를 집으로 보내 돌봄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가구 소득에 따라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주로 '외부 아이돌보미'를 대상으로 설계돼 있어, 실제로 조부모가 직접 손자녀를 돌보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반면 지자체는 조금 더 현실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시는 24~36개월 영아를 돌보는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돌봄비를 지원한다.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이 대상이고, 맞벌이 가정은 소득 산정에서 일정 부분 감면 혜택을 받는다.
광주광역시는 만 6세 이하 손주를 돌보는 70세 이하 조부모에게 월 최대 30만 원을 지원한다. 대상은 역시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이다.
전라남도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인데, 아이 연령을 24~35개월로 제한하고 월 40시간 이상 돌봄을 조건으로 한다. 대상은 중위소득 200% 이하.
울산광역시도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에 대해 아이 연령을 24~35개월로 제한하여 월 최대 30만 원까지 지원한다.
경기도는 '경기형 가족 돌봄 수당'을 통해 일부 시·군에서 조부모나 이웃이 돌보는 경우를 지원하고 있다.
정리하면, 중앙정부는 '아이돌보미 파견 서비스' 중심, 지자체는 '조부모 돌봄 수당' 중심으로 제도가 나뉘어 있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지역별로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선 받을 수 있는 지원을 경기나 다른 지역에서는 받을 수 없고, 심지어 같은 도(道) 안에서도 시·군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제도의 빈틈과 한계
겉으로 보면 조부모 돌봄 지원은 꽤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첫째, 연령 제한이 과도하다. 많은 지자체가 만 24~36개월, 혹은 35개월까지의 영아만 지원한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방학, 단축수업, 오후 돌봄의 공백은 여전히 조부모의 몫이다.
둘째, 까다로운 소득 기준이다. 대부분 중위소득 150% 이하, 혹은 200% 이하로 제한한다. 맞벌이 부부의 소득이 조금만 넘어도 지원 대상에서 빠지며, 특히 수도권처럼 생활비가 높은 지역은 체감 격차가 크다.
셋째, 행정적 부담이다. 일부 지자체는 조부모가 활동일지를 매일 작성하거나 위치 인증을 해야만 돌봄 시간을 인정한다. 또 사전 교육을 수백 분씩 이수해야 신청이 가능하다. 아이를 돌보는 것 자체가 큰 노동인데, 그 노동을 입증하기 위한 또 다른 노동이 추가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간 격차가 크다. 서울에선 지원이 있지만 인천에는 없고, 경기도 내에서도 시·군별로 차이가 난다. 결국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돌봄 지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
현실은 이미 조부모가 아이 돌봄의 핵심 축이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돌봄 공백이 가장 크게 발생하는 초등 저학년 시기에는 지원이 거의 없고, 맞벌이 가정의 부담을 실제로 덜어주기에는 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조부모 돌봄은 이미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노동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노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역 간 격차 없이 전국 단위에서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