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일을 하면서 가장 무겁고 무서운 순간이 있다. 바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다룰 때다. 단순히 규정을 어긴 게 아니라 '사람의 존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건 더 이상 지각이나 근태 같은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는 두렵고, 가해자는 억울하다 주장한다. 그 사이에서 HR은 매번 무거운 저울을 들고 서 있다.
조사의 현실
성희롱 사건은 시작부터 난감하다. 피해자는 "말해도 달라질까요?"라며 망설인다. 혹시라도 소문이 돌까, 가해자의 보복이 있을까, 동료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이미 조심스럽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불안해한다.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조사에는 대체로 HR 여직원이 들어간다. 그 자리에서 피해자는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어떤 경우에는 휴지 한 통을 다 쓰기도 한다. 울음 속에 쌓인 두려움, 억울함, 수치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한편으로는 동성 간의 성희롱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이때는 피해자가 겪는 혼란이 더 크고, HR도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반대로 가해자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 "서로 호감이 있었다고 생각했다"라는 식으로 해명한다. 본인은 장난이나 호의였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가 느낀 불쾌감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양쪽의 진술은 평행선을 달리고, HR은 그 틈에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목격자는 늘 애매하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했는데... 남녀 사이를 누가 알아요"라며 확답을 피한다. 누군가는 괜히 휘말리기 싫어 증언을 회피하고, 누군가는 친분 때문에 진실을 흐리기도 한다. 결국 HR은 불완전한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듯 사실관계를 이어 붙여야 한다.
즉각 분리, 그 후의 혼란
성희롱 사건이 접수되면 HR은 곧바로 피해자와 혐의자를 분리해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해당 팀의 업무 인수인계, 후임자 채용, 남은 팀원들의 업무 배분까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가해자가 갑자기 빠지면 팀원들은 늘어난 업무 부담에 불만을 터뜨린다. "왜 우리 팀만 피해를 보느냐"는 원망이 쏟아지고, 피해자는 오히려 더 위축된다. 분리조치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가 더 큰 압박을 받는 상황이 생긴다.
게다가 분리 과정에서 불필요한 추측과 소문이 퍼지기 쉽다. 누가 왜 빠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뒷말이 돌기 시작하면 사건은 더 복잡해진다. HR은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도,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하다.
징계의 딜레마
규정대로라면 중징계가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해자가 임원이나 조직의 핵심 인물일 경우 회사는 눈치를 본다. "이 사람 없으면 당장 사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징계가 무겁다고 불만이 나오고, 가볍다고 비난이 나온다. 피해자는 목소리가 묵살됐다고 느끼고, 가해자는 회사에 버려졌다고 억울해한다. HR은 양쪽 모두에게 욕을 먹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공정성을 지켜라"라고 하고, 직원들은 "피해자를 지켜라"라고 외친다. 어느 쪽도 완벽히 만족시키기 어렵다. HR은 누구의 편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슬픈 현실이다...
끝나지 않는 사건
징계가 끝났다고 사건이 끝나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회사를 떠나기도 하고, 남아 있어도 늘 눈치를 본다. 복귀 후에도 주변 시선이 따갑고, 작은 대화 하나에도 불편함을 느낀다. 가해자 역시 복귀하면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본인은 억울하다고 떠들며 분위기를 어지럽힌다.
팀은 한동안 뒤숭숭하다. 누군가는 사건 이야기를 은밀히 퍼뜨리고, 누군가는 괜히 말려들기 싫어 거리를 둔다. 결국 HR은 "내가 제대로 보호했나?"라는 자책 속에 남는다. 징계 기록은 남지만, 상처는 기록되지 않는다.
남는 것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절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와 매뉴얼은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건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조직이 줄 수 있는가다.
리더십, 신뢰,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같은 사건은 언제든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