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기억하는 자들의 성(城)

by 샤프

1년 후, 2027년 5월.

세상은 변했다.

뉴스를 도배하던 문화재 비리 카르텔은 붕괴되었고, 박진철 이사장은 구속되었다.

그가 사유화하려 했던 화성 지하 벙커는 리모델링을 거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원(始原)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가장 양지바른 언덕, 화성 성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준의 할아버지 서만석과 1975년 억울하게 죽어간 인부들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복직한 이준의 역사 수업 시간.

창문을 활짝 열자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화성 성곽 위로 따스한 봄햇살이 교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교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고, 아이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준이 칠판에 적힌 오늘의 토론 주제를 분필로 톡톡 두드렸다.


<Q.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인가?>


교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예전 같으면 "네, 힘센 사람이 쓰는 거죠"라고 대답했을 아이들이다.

하지만 맨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예요."


"어째서지?"


"권력자가 시멘트로 덮어도, 50년이 지나도, 누군가 잊지 않고 기억해서 끊임없이 두드리면... 결국 그 단단한 벽도 무너지니까요. 선생님이 보여주셨잖아요."


이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230년 전 정조가 꿈꿨던 신분 없는 평등한 세상, 50년 전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며 지키고 싶었던 소박한 약속, 그리고 1975년의 공포 속에서도 "후손들은 용감하기를" 바랐던 어느 나약한 아버지의 기도.


이 모든 시간이 단절되지 않고, 화성의 성벽 안에서 거대한 공명을 일으키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되었다.


이준은 재킷 주머니 속, 이제는 깨끗한 액자에 끼워진 할아버지의 낡은 흑백 사진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사진 속, 젊은 날의 서만석이 갓난아기였던 이준의 아버지를 안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준도 그들을 향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역사의 지층을 향해 마주 웃어 보였다.


'숙제 다 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아버지, 할아버지.'


딩- 동- 댕- 동-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 밥 먹으러 가자!"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며, 살아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다시 경쾌하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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