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문장 속에 머문 시간의 기억

일기장 속 나와 다시 마주하다

by Nomad K

난장판과 나, 그리고 봄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세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아침,

현관에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누구 신발이 누구 건지

신다 만 슬리퍼와 뒤집힌 운동화,

놀이방은 며칠째 인형이 살고 있고,

거실은 전쟁터처럼 파편이 흩어져 있고

주방엔 밥풀이, 방에는 뒤엉킨 이불이 나를 반긴다.


나는 전의를 상실한 군인처럼

침대에 드러눕는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집에 있으면 더 우울하고, 나가자니 더 힘들고,

나갔다 돌아오면 또 원점이다.


끝이 없는 도돌이표, 집안일.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내가 못해서 이런가.

자책과 짜증과 무력감이 뒤엉켜서

나는 그냥... 눕는다.


잠이 온다.

봄이다. 새싹처럼 피어나고 싶은데

겨울처럼 잠이 쏟아진다.

햇살 가득 들어오는 남향집인데

왜 이리 춥고 움츠러들까.


아무것도 못한 나를, 그래도 꼭 안아주기로 했다.

오늘도 내가 나를 다독인다.

‘그래, 여기까지 온 것도 잘한 거야.’


- 오래된 일기장 속 글을 뒤적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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