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함이라는 단어 앞에 서다

디모데전서 2:1~15

by Nomad K

디모데전서 2장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부제로 시작된다.
바울은 기도의 종류를 나열한다.
간구, 기도, 도고, 감사.
필요를 아뢰는 기도, 예배의 기도,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곧이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 구절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바울의 시대는 로마 제국 아래,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 황제와 권력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바울은 무지한 사람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랍비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고,
로마의 폭력과 권력을 몸으로 겪은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이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서문에
이 문장을 배치했다는 것은 분명 의도적이다.
그는 정치적 순응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하는 자의 마음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고백,
그 고백을 기도의 자리로 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여기서 내 마음에 오래 남은 단어는 ‘단정함’이었다.


경건과 함께 쓰인 이 단어.
바울은 왜 ‘정결’이 아니라 ‘단정함’을 선택했을까.
정결은 구별된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흠 없는 사람, 완전한 상태를 연상시킨다.
바울은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단정함’을 선택했다.
절제된 태도, 삶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품위.
믿음을 과시하지 않아도,
삶의 결에서 묻어나는 신앙의 무게.


바울이 그리고 싶은 사람은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삶이 정돈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말보다 태도가 먼저 복음을 말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가 가볍지 않은 사람.


나는 그 단어 앞에 선다.
나는 단정한가.
나의 삶은 복음 앞에서
단정함으로 정돈되어 있는가.
완벽하지 않아도,
믿음이 나의 말과 선택과 침묵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가.
바울은 묻는다.
“너는 흠이 없는가?”가 아니라
“복음이 너를 정돈하고 있는가?”라고.
오늘, 나는
단정함이라는 단어 앞에
조용히 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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