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
시편 1편
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3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굳어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악의 자리에 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르지 아니하고, 그 편에 서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삶의 자세는 어느 순간 서서히 굳어진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 삶 가운데 놓인 오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악인의 길이란 어쩌면 노골적인 범죄만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익숙함,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지’라고 여기는 마음, 진심 어린 조언 앞에서 귀를 닫아버리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삶 가운데 놓인 오만함의 경계선은 아닐까.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년마다 성경 읽기 표를 받아 들고도 성경 1독은 여전히 높은 문턱처럼 느껴진다. 오늘 주일 설교 중 한 집사님이 자신의 나이만큼 성경을 읽어보고 싶다고 고백하셨다고 한다.
내 나이 마흔둘. 나는 아직 그만큼 성경을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멈췄다.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참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자리에 이를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다음 구절에 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편 3절은 너무도 평화로운 자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이 유독 평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나무가 스스로 애써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공급이 끊이지 않는 자리에 옮겨 심긴 나무이기 때문이다.
마를 이유가 없는 자리.
그 나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면 답이 보인다. 때가 되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열매, 조급함도 과시도 없이 생명의 기운이 흐르는 마르지 않는 잎사귀.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공급의 자리에서 그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의 실제 모습일 것이다.
반면 시편 기자는 악인들을 바람에 나는 겨에 비유한다. '겨'란 곡식을 탈곡할 때 생기는 껍질이다. 알곡은 무게가 있어 바닥에 남지만, 속이 없는 겨는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어쩌면 ‘겨’는 말은 많지만 삶으로 남지 못하는 신앙의 모습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뿌리내리지 못해 상황과 바람에 흔들리는 믿음.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혹시 나도 겨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나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