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1-11절
디모데전서 3장 1–11절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말한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얻으려 함’이라는 표현으로 문을 열지만, 바울은 곧바로 자격 조건을 나열한다. 감독의 직분은 단순히 열망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삶으로 증명되고 있는 사람에게 맡겨지는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감독이란 누구일까. 자연스레 장로, 감독, 목자처럼 공동체를 돌보는 영적 지도자가 떠오른다. 바울은 그 자격을 열거하며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
헬라어 아네필렙토스는 ‘붙잡힐 만한 약점이 없다’, ‘공개적으로 비난받을 명백한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실수 한 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울이 말하는 ‘책망할 것이 없음’은 넘어지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다.
넘어졌을 때 회개하고 다시 바로 설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숨기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삶을 정직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조건은 이후에 나오는 모든 자격을 아우른다. 가정, 성품, 관계, 말과 행동 전반에 걸쳐 삶의 균형과 일관성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그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완벽이 아니라 일관성이 기준이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가정으로 시선을 옮긴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이 구절에서 유독 마음에 남은 표현은 ‘모든 공손함’이었다. 바울은 왜 굳이 이 말을 덧붙였을까.
복종은 자녀의 상태를 말한다면, 공손함은 그 복종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이다. 문법적으로 보면 공손함의 주체는 자녀다. 그러나 바울이 책임의 초점을 두는 곳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다.
이 사람은 자녀가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도록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인가? 복종은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손함은 강요할 수 없다.
가정은 가장 솔직한 민낯이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본이 없다면 자녀에게 공손함은 생겨나지 않는다. 자녀의 공손함은 명령의 결과가 아니라, 부모가 살아낸 공손함의 반사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는 온 가족 신년 특별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새벽기도에 다녀왔다. 5시 30분, 나에게도 결코 쉬운 시간은 아니다. 매일 6시 새벽기도보다 30분 빠른 시간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일어나 주었고, 함께 예배 자리에 앉았다. 기도회 시작 전, 막내가 어제 친구와 놀다가 과자를 사 먹었다는 이야기를 갑자기 고백처럼 털어놓았다. 왜 그 이야기를 꼭 그때 해야 했을까. 이상하게도 그 고백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공손한 태도로 새벽기도에 함께해 준 이 아침이 감사하다.
‘모든 공손함은 부모가 보여 준 공손함의 거울과도 같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복종을 요구하기보다, 말을 앞세우기보다,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