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도 연단이 필요하다

디모데전서 4장 6절~16절

by Nomad K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당부한다.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그는 “형제를 깨우치라”라고 말한다. 왜 공동체가 아니라 형제일까?
바울은 권위로 가르치기보다, 같은 자리에 서서 함께 걷는 관계를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형제를 깨우친다는 말에는 지시가 아니라 신뢰가 담겨 있다.


또 그는 “가르침을 받았다”가 아니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라고 말한다. 양육은 한 번 듣고 끝나는 배움이 아니다. 살아내기 위해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양식이다. 경건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성숙의 문제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바울은 더 분명하게 말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연단하다는 말은 헬라어 gymnazo.
고대 체육관에서 선수들이 반복 훈련으로 몸을 단련하던 장면에서 나온 단어다. 단순한 결심이나 자기 관리라기보다, 고통과 반복을 동반한 훈련에 가깝다. 헬라 문화가 강했던 에베소에서 바울은 경건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활의 언어로 끌어온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영성도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경건 역시 연단이 필요하다.


나는 하루에 두 번 수영을 한다.
오전 9시, 오후 2시. 네 달째 거의 매일 물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오전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쓰러지듯 잠들곤 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오후 수영을 갔다. 수영은 반복의 운동이다. 네 가지 영법을 계속 연습하지만, 할수록 부족한 것만 더 잘 보인다. 가기 싫은 날도 많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나는 습관처럼 수영장으로 향하고 있다.


육체의 연단에는 분명 유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원리를 영성 훈련에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매일 큐티를 글로 쓰고, 성경 1독 챌린지를 시작했다. 다이어리에는 짧아도 기도문을 적는다.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범사에 유익하니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경건은 감동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연단을 통해 몸에 배는 것임을 배워가는 중이다.


언젠가 가기 싫은 날에도 생각하지 않고 수영장으로 향하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 앞에 서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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