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에 비가 내린 날

by Nomad K

시험지에 비가 내린 날
막내가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면서 지난 학년 공부를 돌아보는 수학 문제를 학교에서 시험으로 쳤다. 문제는 40개. 그중 17개를 틀려왔다.
시험지를 펼쳐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주 세차게.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함께 오답노트를 하다가 결국 큰소리가 나고 말았다.
“이것도 모르고 있었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막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새 학기 적응도 해야 하고, 영어 숙제도 다 못 했고, 오늘 해야 할 것도 많은데 학교에서는 오답노트를 내일까지 해오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그것들이 꽤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1월부터 나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골프를 처음 배우는 사람을 골퍼+어린이= 줄여서 골린이가 하는데, 그런 골린이인 내가 친구와 캐디도 없는 PAR3 연습장에 간 날이었다.


오늘 내 스코어에도 비가 내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네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버겁고 힘든 마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이겨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딸에게 말한다.


그 말이 꼭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밤이 되어 딸은 울다가 잠이 들었다. 눈물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저 안쓰럽다.
오늘은 우리 둘 다 시험지 위에 비가 내린 날이다.
하지만 비가 내렸다고 해서 길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내일은 조금 덜 젖은 마음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겠지. 그리고 비가 내린 뒤 하늘은 더 맑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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