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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Oct 24. 2024

사소한 티타임.

요즘 불면증이 있는지 깊이 잠들기가 힘들다.

잠을 못 자 피로가 쌓이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부정과 긍정의 기운 중 부정의 기운이 강해진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도 찌뿌둥한 기분이다. 날씨도 꾸리꾸리해서 더 쳐지는 느낌이다.

내 기분이야 어쨌든 난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눈이 반쯤 풀린 뚱한 표정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한다. 

'왜 이렇게 기운이 안 나지? 뭔가 이벤트가 필요해...'

16년 차 전업주부에게 특별한 이벤트랄 건 딱히 없다. 그래도, 그래도 오늘은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으로 하루를 망치고 싶진 않다. 아이들에게 시든 파뿌리 같은 표정을 보이는 것도 미안하다.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꾸물꾸물 아침을 차리면서 뇌를 풀가동 한다. 


'기분 전환으로 뭐가 좋을까?'


요즘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고등학교 친구가 떠오른다. 

친구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우리 집 둘째랑 동갑인 딸이 하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 육아관이 비슷했던 터라 서로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또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 많은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나에겐 심리치료사(?) 같은 친구다.


최근에 매일 정신상태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기대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이미 어른이 된 지 한참 됐고 심지어 빠르게 늙어가는 요즘이지만)

 '심심한 것도 꿀꿀한 내 기분도 오롯이 나의 몫!' 

 성숙한 자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정한 어른은 친구 또는 지인의 시간을 소중히 한다'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쓸데없이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을 자제하는 중이다.


한창 생각이 많을 때 한 주가 멀다 하고 통화를 했던 친구에게 점점 연락을 뜸하게 하다. 2~3개월에 한 번 연락을 하는 기특한(?) 상황까지 이루어 낸 것이다.(친구가 전화 많이 한다고 절대 꼽준 건 아니다)


그랬지만... 아침밥을 차리는 내내 나의 마음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날씨에 뻥 뚫린 창밖을 바라보며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따스한 차와 함께 전화로라도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다.

뭔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빨리 애들을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애들을 보내고 빠르게 식탁 위를 정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친구에게 톡을 보내 본다.

'날이 꾸리꾸리하네. 우리 오래간만에 이야기하면서 티타임 할까?'

뭔가 싸한 느낌은 있었지만... 답이 없다. 

친구는 아침잠이 많아서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나서 다시 잠들었을 확률이 크다.

'아직 자나 보네. 어떡하지? 깨우고 싶지는 않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차례 톡을 더 보내 보았지만 역시 답이 없다.

'아! 친구의 시간을 뺏는 것도 싫은데 단잠을 방해하는 것은 더 싫다!! 하지만 아침 내내 상상했던 친구와 티타임도 잃을 수 없다!'

내 이성과 감정의 타툼은 감정의 승리다. 정말 이기적인 나!!


'또로로 또로로' 친구에게 거는 전화 연결음에 괜히 마음이 콩닥거린다.

'여보세요....?'

잠에 취한 친구의 목소리에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너... 이렇게 아침에 자다가 급한 연락 왔는데 연결 안 되면 어쩌려고 그러냐?"

"응??"

"아니 지금 큰일 났다구~~~"

"어엉? 큰 일? 무슨 일 있어? 괜찮아?"

미안함과 머쓱함에 괜한 장난이 걸고 싶었던 내 말에 친구의 정신이 똘망똘망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흐흐

"미안, 장난친 거야. 너랑 티타임 할라고 톡 했는데 못 보길래... 더 잘래? 미안하다"

"아~~~~ 아냐 잠 다 깼어. 티타임 하자 큭큭"

나의 이기심에 속에 티타임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내 나이 40대 중반 이제 좀 어른이 되었나 했더니 아직도 이러고 있다. 조금은 자괴감이 들 뻔했지만, 이렇게 받아주는 오랜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각자의 집에서 각자 다른 차를 마시며 1시간 20분 동안 대단한 주제랄 것도 없는 평범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별것 없는 이 작은 이벤트를 완료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제 새벽에는 아픈 첫 째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잤다. 그리고 아침부터 학교를 쉰 아이를 케어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비가 내렸었다. 다행히 오늘 아이는 컨디션을 회복해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늘 그런 평범한 일상이지만 가끔씩 기운이 빠지는 날엔 뭔가 작은 이벤트가 절실한 날이 있다.


오늘 조금 욕심부린 '티타임' 덕분에 무거웠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정오가 될수록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창으로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는 것이 점점 맑게 개는 내 마음 같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가 싶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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