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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Jan 25. 2021

전직 일러스트 작가.

첫 번째 인터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이제는 너무 희미해져버려 본인들조차 생소한, 엄마가 되기 이전의 그녀들의 모습을 인터뷰한 첫 번째 기록이다. 

이 담담한 기록의 흔적이 사람들에게 어떤 큰 의미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혹은 이 글을 읽는 잠시 동안 그녀들이 반짝반짝 빛났던 자신의 과거를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삶의 작은 에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이름 : **희

나이: 만 42세

결혼 전 직업 : 일러스트, 삽화가.

결혼 후 직업 : 9살 딸아이를 키우며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엄마.

작가와의 관계 : 20년지기 친구.


어릴 적 그녀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소녀였다. 

나름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그녀는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보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 가지를 좋아하면 끝까지 해내는 성실한 성격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역시 공부보다는 그림에 치중한 삶을 살았고, 마침내 그녀가 미술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하루종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꿈같던 대학시절을 마치고 그녀는 취업을 거부(?) 하고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처음엔 거의 백수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홍대 길거리에서 팔기도 하고, 간간이 들어오는 가격을 후려친 싼 그림 일거리들을 하며 배고픈 무명작가의 길을 걷는다. 성실한 그녀는 틈틈이 공모전에도 참가했는데 그때까지 운이 없었지, 실력은 없지 않았기에 몇 차례 당선되어 상금도 받고 부상으로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엄마 아빠는 아마 다른 생각이셨겠지만...)

가끔은 평범하게 취업하여 안정된 수입이 있는 다른 친구들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매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배고프지만 자유로운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모 사이트에 몇 년 간이나 만화 일기를 연재하였는데, 그때만 해도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팬을 만날 수가 있었고 그녀는 더욱 힘을 내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일러스트 작가로서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그녀를 찾는 출판사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웬만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길에서 그림을 팔지 않아도, 돈이 되는 공모전을 찾아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그녀는 그녀의 방에서 의뢰전화를 받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만의 전시회를 몇 차례 열수 있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오로지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된 책 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앞으로, 이대로, 늘 하던 대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성실함으로, 그림에 대한 그 열정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녀 앞길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인터뷰


결혼 전 나의 포지션은? 

책 표지나 출판물에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였습니다.


지금 나의 포지션은?

주부로 살고 싶진 않았지만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결혼 후에 일을 언제, 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결혼 전 나의 모든 에너지가 그림에 맞춰져 있었기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내 에너지는 아이에게 집중되었다. 에너지를 나누어 쓰는 일은 나에게 불가능했다. 아기가 세 살이 되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정 엄마가 가끔 아이를 봐주셔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날도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고 난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작업에 몰두했던 나는 아이가 방으로 들어온 줄도 몰랐다. 그러다 아이는 바퀴가 달린 의자 위로 올라갔고, 그만 떨어져 다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처음 있었기 때문에 난 너무 놀랐고, 아이는 심하게 울었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았으니 생명에 책임을 다해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5살에 유치원에 갈 때까지만이라도 일을 잠깐 쉬자고 생각했다. 1년 반만 쉬고 다시 복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다시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지만 연필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전처럼 그림일기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하얀 것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일거리도 다 끊긴 상태였지만, 일을 받는다고 해도 전처럼 그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난 내 일을 몇 년 동안 타지 않아도 언제든지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큰 착각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컸다. 너무 우울증이 심해서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였다.


결혼 후 가장 힘들었을 때?

시댁 식구들에게 나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부정당했을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내가 되길 원하셨다. 그때는 마치 내가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결혼 후 가장 좋았을 때?

친구 같은 딸이 생겨셔 좋다. 


결혼을 안 했다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잘 팔리던 못 팔리던지 간에 내 책을 내고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가 되어있었겠지.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나이 많은 결혼 안 한 불효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결혼은 단점도 있지만, 다른 장점도 있다.


그 시절 직업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한 출판사의 삽화 작업을 막 끝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난 책이 출간된 후에 갖는 뒤풀이 모임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은 출판사 사장님이 뒤풀이 자리에 내가 꼭 왔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셨다길래 얼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난 사장님께서 내 그림을 너무 인상 깊게 봤다며, 글을 써놓은 게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셨다. 내 그림과 글로 책을 내고 싶다고 하셨다. 술에 취해있었던 난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술이 깬 뒤 생각해 보니 사장님이 술김에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습작해 놓은 것이 있었지만, 과연 이것들이 책으로 낼 만한 내용인가 하는 생각에 창피함이 앞섰다. 당장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진심으로 내 글과 그림을 원하셨고, 내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몇 개월이나 기다려주셨다. 어렵게 마음을 결정한 후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손도 느리고 생각도 많았던 난 그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데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럼에도 사장님은 한 번도 다그치지 않고 나의 느린 페이스를 맞춰주시고 기다려주셨다. 

드디어 편집까지 끝나서 이제 표지만 완성하고 인쇄만 하면 꿈에 그리던 나의 책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너무 걱정이 많고 완벽주의적인 나의 성격 탓이었을까? 표지를 완성하고 결정하는 데에도 몇 개월이나 걸렸다. 그 사이 남편은 나와의 결혼을 바라고 있었는데, 더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던 남편은 결혼을 먼저 하자고 했고, 결국 결혼 후에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엄격하신 시어머니와 넷이나 됐던 시누이들 사이에서 내 유리 멘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산산조각이 났고, 결국 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출판사의 사정으로 책 출간이 무기한 연기가 되어버렸다. 나에겐 두근거리고도 안타까운 기억이다.


가까운 미래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다시 그림의 의지가 생기고 그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서 소소하게라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돈 버는 일로까지 연결되면 더 좋겠다.


앞으로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나?

나만의 작업실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만큼(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 하고싶다.(즉, 내가 돌보아야 할 아픈 가족이 없고, 의식주에 큰 문제가 없어야 가능하다는 말임.)

 큰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없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내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인터뷰를 끝낸 소감 한마디?

짧은 인터뷰였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나서 따듯한 차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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