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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Jan 24. 2021

프롤로그

기나긴 코로나는 결국, 끝나지 않았다.

참으로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작년, 지구상의 모든 엄마들이 두려워하는 두 달간의 긴 겨울방학이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이 시작된 것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래도 겨울방학이라 다행이다 생각했다. 새 학기에는 괜찮아지겠지...

개학이 2주 미루어졌다. 2주 후엔 갈 수 있겠지... 또 미루어졌다. 그렇게 4주, 한 달, 두 달...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곧 끝나겠지 했던 코로나는 결국엔 1년이 지난 지금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첫째를 4살까지 독박으로 키우고... 5살에 겨우 유치원에 보냈다. 2살 차이 둘째는 첫째보다 똘똘한 것 같아서 1년 일찍 4살에 기관에 보냈다. 5년 동안 감옥살이에서 겨우 오전 동안의 자유시간이 생겼었다. 둘째가 어린이집 가기 전 마지막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우울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다음 해 봄, 아이들 모두가 원에 가고 집에 덩그러니 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없었다. 30 여년을 자유롭게 살다가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난 후로 처음 얻는 자유였다.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 동안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었다. 취미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새로운 일거리도 찾게되고 새로운 인간관계도 맺게되고 그래서 낮아졌던 자존감도 많이 회복되었었다. 인생의 목표란 것이 생겼었다. 

이제 다시는 옛날로는 돌아갈 일이 없으리라 다짐했는데... 이노무 코로나가 나를 다시 집안 일과 육아의 감옥에 집어넣었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눈뜨면 아침밥하고 애들 온라인 수업 시키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또 점심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애들 뒤치다꺼리와 공부를 봐주다가 또 저녁 준비하고 또 설거지... 아이들이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집도 금방 어질러진다. 정리정돈이 끝이없다. 

좀만 엉덩이를 붙이면 집안 일이 배로 늘어나 있다. 남편까지 집에서 일을하니 반찬도 신경써서 많이 해야한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 라이프는 1년째 이러고 있다. 너무 지쳤고, 무기력했다. 난 더이상 참을 수 가 없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마냥 이렇게 일상에 끌려다니며 삶의 의미가 뭔지도 모른 채 살 수는 없었다.

새해가 되어서 내 나이도 벌써 44세가 되었다. 이렇게 젊음이 끝나는 것인가... 이렇게 남편과 아이들의 그늘에 가려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늙어갈 수는 없다. 나도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난 그렇게 의욕적인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끈기가 있는 것도, 남다른 어떤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지도 엄청 약하다. 근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끝나는 것만 기다리다가는 정말 무기력이 날 온통 지배해 버릴 것 같았다. 열정을 포기하고 인생에 타협하며 가슴 뛰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뭔가 개운하지 않은 찝찝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지 않았다.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오늘이 아니어도 날은 많겠지만, 난 그날을 오늘로 정했다.

오늘도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요즘 계속 악몽 비슷한 꿈들을 꾼다. 학교에서 시험 보는 꿈,  회사에서 상사한테 어마 무시한 일거리를 받는 꿈 등등...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들인데도 아직 꿈에 나오는 것을 보면 내 인생에 어지간히 싫은 기억이었나 보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오늘 아침은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 재능이 없었던 나는 살림과 육아가 많이 힘겨웠고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로써 10년 넘게 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자극이 필요했다. 동기부여, 나에겐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사실 요즘 집에 있으면서 애들이 꿈나라로 가면 유튭보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었는데, 동기부여 영상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말 무기력할 때는 이런 것을 찾아 볼 마음조차 안 들지만, 난 없는 의지력을 짜내어 7, 8분 정도 되는 영상을 몇 개 찾아 보았다.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5% 정도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방 문을 박차고 나갔다. 눈을 의심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식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잔소리와 회유와 꾸지람으로 아이들의 공부습관을 들이기 위해 이 기나긴 코로나 기간 내내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래서 더 내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공부해라, 아이는 안 하겠다! 버티며...

드디어 그동안 내 잔소리의 결실이 맺어지는 것인가? 오늘은 왠지 아침부터 희망적인 느낌이다. 기쁜 마음으로 공부를 끝낸 아이들을 위해 오래간만에 닭을 튀겼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주방은 온통 기름투성이가 되었다. 다시는 튀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닭은 닭집에서 사 먹고 그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쓰자.

아이들은 무사히 오늘의 공부를 마쳤기에 자유를 얻었다. 그들은 유튭과 게임을 신나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그래봤자, 눈으로만 아이들을 봄) 헐리스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지 생각했다.

1년 만이 었다.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 본 것이... 이렇게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것에 잠깐 감동받았다. 울뻔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재작년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 쓰고 정말 오랜만이었다.

1년 넘게 내 그림도 안 그리고 글도 안 썼다. 갑자기 하려니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뭐든지 처음이 힘들다. 시작하면 그다음은 훨씬 쉽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을 우선 쓰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프롤로그다.

이 글을 시작으로 난 더 재미있고 의미있고 감동이 있는 글과 그림들을 그릴 것이다.

오늘이 그 시작 날이고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글이 시작됐기 때문에 내일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오늘 아침보다는 훨씬 쉬운 내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면 분명히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아! 그날 시작하길 잘 했다. 그날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지.

내 삶을 바꾸고 싶으면, 오늘 당장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두서없고 이상한 글을 쓴 오늘이 시간이 지나면 값진 하루가 될 것이다.

시작은 참 어렵다. 무사히 끝내는 것은 더 힘들겠지만, 일단 시작이라도 한 내게 박수를 쳐주자.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된 것 같다. 내일은 오늘 보다 조금은 개운한 아침을 맞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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