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주 32시간, 유연근로제, 무제한 휴가, 재택근무
지난해 11월 잡코리아가 2~30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이직 경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 이직을 감행한 이유 1위(38.6%)로 '워라밸 불만족'이 꼽혔다고 한다.
만약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워라밸을 찾아 나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데 워라밸까지 기대하는 건 너무 욕심이 아닐까 싶다ㅠㅠ 생각보다 안정적인 스타트업도 많고, 생각보다 연봉도 괜찮은 스타트업도 많다만... 생각보다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찾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란, 기업가정신을 살려 대기업에서 착수하기 힘든 분야에 도전하는 신규 기업을 지칭한다. 이미 사업 기반과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조직이다.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일종의 사치라고 본다.
하지만, 인재 영입 전쟁이 심화되면서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워라밸 증진이 요즘 화두가 되는 모양새다. 또한 워라밸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해본다면 '덜 일하고 더 벌고 싶은' 우리에게 좀 더 매력적인 스타트업을 찾는 일이 수월해질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린 존재이지만, 1세대 스타트업의 상징으로서 '배민(우아한 형제들)'의 주 32시간제 도입 소식은 업계에 잔잔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관련기사 : http://www.cbci.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796)
이미 주 35시간 근무를 시행 중이었던지라 임직원들이 느끼는 임팩트가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으나, 주 4일제에 준하는 근로시간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그 외 '여기어때'나 일부 카카오 계열사들도 주 4.5일에 준하는 근무시간 제도를 운영 중이다.
사실 우리도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커피 마시고 멍 때리는 시간들을 빼면 실제로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은 주 40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간들 줄여서 한 시간이라도 일찍 퇴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주 32시간은커녕 주 40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회사의 입장이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배민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2022년 IT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요즘은 대기업들도 유연근로제, 자유로운 휴가 사용 정도는 흔히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직원들이 이를 마음 편히 이용하는지는 의문이다. 오랜 시간 유지해온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조직 장인 상황에서 쉽지 않다는 것은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스타트업은 이러한 직원 편의적 인사제도들이 규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혁신을 주창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구태한 인사 제도를 답습할 확률이 극히 낮을뿐더러, 특히나 IT업계는 일률적인 근태 관리보다는 개발자의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1개월의 근무시간 총량 내에서, 하루 3시간의 의무 근로시간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일간, 주간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이번 달에 일해야 하는 법정근로시간이 160시간이고, 첫 3주 동안 일이 많아 145시간의 근무를 했다면, 마지막 주에는 15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재택근무는 거의 무제한에 가깝다. 미리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도 원칙적으로는 없다. 화상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너무나 잘 갖춰져 있어, 협업에 전혀 지장이 없다.
또한 휴가 사용도 최소 1시간 단위부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한창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휴가를 올려 갑자기 귀가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자유도가 높다. 물론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감탄했던 부분이다.
더 파격적인 스타트업도 찾아볼 수 있다. '당근마켓'과 '토스'는 휴가 일수에 제한이 없는 무제한 휴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임직원 자율에 맡기더라도 수천만 명이 쓰는 서비스가 성장해나가는 데에 있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네이버 최수연 대표가 취임하면서 최근 복지제도 개편안에 대한 보도자료가 있었다.
(관련기사 :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30&aid=0003004602)
정작 '블라인드'에서는 말이 많은 것 같긴 하지만, 3년 근속 시 6개월 무급휴직은 파격적이라고 본다. 네이버, 카카오 등 판교의 공룡들이 움직이면 국내 IT업계 전체가 주목한다. 올해는 뭔가 스타트업 씬에도 워라밸, 복지 등이 하나의 화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
나에겐 누가 뭐래도 이직한 현 회사의 최대 장점은 '직주근접성'이다. 왕복 출퇴근 시간이 1시간 30분 단축되었다. (그마저도 거의 재택이라 제로에 가깝다)
전 직장이 공장이 필요한 제조업 회사이다 보니 도심이나 주거지와는 거리가 있는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반면, 내 현 직장을 포함한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은 유능한 인재 유치를 위해 접근성이 좋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접근성이라는 것은 너무나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직을 고려함에 있어 꽤나 우선순위가 높은 요인이었다. 덕분에 하루에 1시간 반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생겨서 잠이라도 더 잘 수 있고, 이렇게 브런치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피스뽕'도 무시 못한다. 요즘은 공유 오피스도 워낙에 깔끔하게 잘 빠져있고, 자체 임대하는 경우라면 대표들이 오피스에 기업의 가치관과 브랜드를 센스 있게 녹이는 편이라 일할 맛 뿜뿜 하게 만드는 사무실이 많다. 그리고 갑갑한 공장 뷰에서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10차선 사거리 뷰가 주는 '뷰뽕'도 맞으면 어질어질하다.
상황에 따라 겸업을 허용해주는 관대하신 스타트업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겸업 행위를 사규로서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타트업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유능한 인재 유치를 위해, 혹은 대표의 남다른 철학으로 겸업을 허용하거나 장려까지 하는 곳도 본 적이 있다. 퇴근 후에 짬짬이 내가 하고 싶은 사이드잡을 맘 편히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정리하자면,
스타트업에서 기본적으로 워라밸은 기대하지 말자.
다만 인재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근태나 휴가 제도를 시행하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고,
이는 스타트업 업계의 하나의 트렌드로써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적은 근무 양이 아닌, 넓은 의미의 워라밸 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워라밸이나 매력적인 복지도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중견급 스타트업이나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정말 한번 인생을 걸어보고자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해보겠다면,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당분간 잊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