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연봉협상, 스톡옵션, 사이닝보너스
스타트업 이직 소식을 알렸을 때 지인들이 묻는 단골 질문이 있었다.
연봉은 맞춰줬어?
애석하게도, 비개발자로서 대기업에서 IT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심했을 때 이미 연봉 욕심은 접었었다. 오히려 어느 정도 깎일 가능성도 감안하였다. 한 푼이 아쉬운 스타트업에게 코딩 하나 못하는 문송한 나한테 투자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가 아닌가!
솔직한 마음으론 여러분에게도 연봉 욕심은 조금 접어두라고 조언해드리고 싶다. 애초에 우린 돈보다 커리어와 성장을 위해 택한 길이 아니던가. 몸값은 오히려 조금 깎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채용전형 과정에서 마음도 더 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전에 다니던 대기업 대비 기본급의 앞자리에서 3이 플러스됐고, 사이닝보너스와 인센티브까지 포함하면 자릿수가 바뀌는 금액의 오퍼 레터를 아래와 같이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입사 후에는 적지 않은 수량의 주식도 추가로 계약하였다.
이전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과장이 되었겠지만, 일개 팀원에 불과한 지금의 급여 수준보다 많이 못 미칠 것이다. 성과급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회사였던지라, 성과급이 맥스로 터져준다면 현재 계약 연봉과 비슷한 수준일 수도 있겠다. 이마저도 내 권한 범위를 넘는, 회사 성과에만 의존하며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분이 현재 회사에서 낭중지추와 같은 핵심인재가 아닌 이상, 매년 연봉 계약 시즌에 쥐꼬리만큼 인상된 숫자를 받아 들고 말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직이라는 활동은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 단숨에 연봉의 퀀텀점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연봉협상 과정에서의 기술과 약간의 운, 기가 막힌 타이밍 등이 맞아떨어져야 최상의 처우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스타트업은 생각보다 가난하지 않다. 괜찮은 스타트업에는 국가건 투자자건 아낌없이 자본을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대비 스타트업의 장점은 연봉 외에도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조건만 갖춘다면, 단순한 억대 연봉 계약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톡옵션이다. 스톡옵션은 미리 정해둔 가격으로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이다. 상법상, 부여받은 후 최소 2년이 지나 행사할 수 있고, 통상적으로 4년 정도 재직하면 100% 행사가 가능하다.
요즘은 상장사나 일반 기업도 스톡옵션을 인재 유인책으로 많이 활용하지만,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이 상대적으로 훨씬 가치가 높다. 벤처기업 인증에 따른 세제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일수록 가파른 성장으로 인해 높은 행사 이익 및 양도 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매치 그룹에 2조 원에 인수된 '하이퍼커넥트'의 경우, 인수 전 임직원들이 부여받은 스톡옵션 가격은 500원에서 39,800원 선이었다. 인수가액이 주당 17만 원인걸 감안했을 때, 많게는 주당 340배의 행사 차익이 예상된다. 인수 당시 남은 스톡옵션은 80만 5000주였으니까, 스톡옵션 부여받은 임직원이 200명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1인당 평균 6억 원 이상의 세전 행사차익이 생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러 기사를 통해 추론해본 결과로, 사실과 다를 수 있음)
(관련기사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1012490681906)
물론 이는 극단적으로 성공한 스톡옵션 사례이며, 실제로는 스톡옵션 행사까지도 쉽지 않고 스톡옵션 자체를 부여하지 않는 회사도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두자. (내가 지원한 회사가 스톡옵션 제도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인터넷등기소에서 해당 기업의 법인등기부등본을 발급하여 주식매수선택권 조항 여부를 통해 1차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다른 차원의 보상으로, 직급을 높일 수도 있다. 대기업의 대리쯤 되는 여러분이라면, 스타트업에서 높게는 부장급 이상, 직책으로는 팀장급 이상을 제안받거나 제안해볼 수 있다. 회사 상황과 여러분의 개인 역량에 따라 C-Level도 충분히 가능하다.
높은 직급은 회사 내에서 그만큼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조직에서 팀장급의 권한은 대기업에서의 그것과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크고 매력이 있다.
물론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입사 이후 줄곧 팀장직 제안을 받았지만 실무 경험을 좀 더 쌓고자 고사한 바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회사 측과 적절히 조율해볼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사이닝보너스(=사인-온 보너스)를 활용하자. 쉽게 말하면 계약 연봉 외에 입사 시 부여하는 일회성 인센티브이다. 일반적으로 1년 이상의 근무를 조건으로 한다. 희망연봉에 못 미치는 부분만큼을 사이닝보너스로 보전해줄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해볼 수 있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웬 선비 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첫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여러분에게는 당장의 연봉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좇아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충분히 많다.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김나이 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었다. 어떤 산업이든, 회사든, 혹은 개인이든 꾸준히 성장하여 A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변곡점을 찍고 B로 쇠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주황색 곡선처럼 초기에 약간의 챌린지를 겪을 수는 있으나 결국 또 다른 성장곡선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연봉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해오던 일이 아니고, 산업군도 다르다면 이직 과정에서 약간의 몸값 하락이 있을 수도 있다. 근데, 그래 봤자 나의 긴 인생 여정에 있어 큰 임팩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직을 한 사람의 의지라면, 기존 회사에 남았을 때의 몸값을 뛰어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그렇다고 애초부터 저자세일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대기업에 어렵게 입사하셨던 분들이고, 여러분을 최종 합격시킨 회사들은 어떻게든 여러분을 모시려 할 것이다.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당당하게 요구하여 본인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는 것이 베스트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러분 현재 연봉 맞추지 못할 만큼 스타트업이 생각보다 가난하지 않다.
연봉 외에도 스톡옵션, 직급 조정, 사이닝보너스 등 많은 보상수단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연봉 몇백 몇천 올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회사에서의 기회와 성장의 가치에 좀 더 가중치를 두자. 몸값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연봉협상에 대한 스킬은 정말 중요하므로 나중에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