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대적인 공연, <Sleep no more> 후기

- 뉴욕 McKittrick 및 상하이 McKinnon 방문기

by 준희


Sleep no more! Macbeth hath murdered sleep!

- Shakespeare's Macbeth





셰익스피어의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자, 그가 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아마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맥베스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이머시브 연극 Sleep no more(슬립노모어)는 현재 뉴욕과 상하이에서 상연중이다.

이 글을 적는 현 시점에선 뉴욕 공연은 내달 4월을 끝으로 종연한다고 발표하였고, 상하이는 아직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듯 하다.



일단 이머시브 극이란?

Immersive, 즉 스며들다/몰입하다 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이를 극에 대입해보면 관객 참여형 공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극들은 '극장'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무대' 및 '객석'이라는 공간이 존재하고, 관객들은 정해진 자리에서 주어진 무대를 보며 극을 관람한다. 하지만, 이러한 틀을 깬 공연의 형태가 바로 슬립노모어 같은 이머시브 극이다. 특별히 정해진 무대가 없고, 객석도 없어서 일정한 공간 내에서 관객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극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이다. 텍스트로 보면 이게 대체 무슨 형태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관객이 극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좋다. 즉, 관객이 참여하면서 공연을 보고 공연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관객의 행동에 따라 극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의 극이 최근에 가장 부상하고 있는 공연의 한 종류인데, 슬립노모어가 이런 이머시브 공연의 길을 텄다고도 할 수 있는, 거의 이머시브 공연의 시초같은 극이다.


그럼 과연 왜 이런 이머시브 공연이 요즘 공연계의 트렌드가 되었을까?

수많은 OTT 플랫폼이 등장하며, 사람들은 쉽게 집에서도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가 되었다.

영화관을 갈 필요도 없이 OTT로 영화 관람을 하고, 심지어는 뮤지컬 및 연극 공연도 녹화 상영을 하여 온라인으로 중계를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서, 현장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연 예술이라는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현장감'이 중요시되는 공연의 형태가 부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장감을 십분 살린 공연 형태가 바로 이머시브 극이다. 관객들은 극이 요구하는 의도에 따라 극을 관람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서, 직접 참여가 가능하게끔 하며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관객이 되는 것이다.


아마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본인이 극 속에 들어와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설레고 황홀한 지 알 것이다. 이는 그냥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느끼는 몰입감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눈 앞에서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가슴이 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슬립노모어는 무대도, 객석도 없다. 말 그대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연이다.

관객들은 6층짜리 호텔로 초대받아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람(관찰)한다.

한 건물 전부가 무대인 셈이다. 20여명의 배우가 각자의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자유롭게 자기 마음을 끄는 배우를 쫓아다니며 그 인물의 스토리를 관찰한다. 메인 플롯은 맥베스의 플롯을 따르고 있지만 서브 플롯으로 소설 레베카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등, 여러 캐릭터가 상호작용 하며 맥베스와 그의 주변 캐릭터들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극은 대사가 없이 몸짓으로만 진행되는 무성극으로, 어떻게 보면 피지컬 씨어터의 한 형태를 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극은 무용극이 아니라 연극이다. 분명 대사는 없지만, 극의 스토리가 안무로서 관객에게 전달되고 몸짓이 마치 대사가 되어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몸짓이 언어가 되는 지점도 이 극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근본적으로 언어는 기호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연극이라는 세계에서는 이런 기호를 탈피한 즉, 희곡 혹은 텍스트를 탈피한 극들이 존재하는데, 이 극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의도된 기표로서 관객에게 해석을 요구하는 연극이 아닌, 보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공연이기에 가장 현대적인 공연예술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231228 뉴욕 McKittrick Hotel


<Sleep no more>



슬립노모어는 워낙 유명해서 몇년 전 부터 알고 있었지만, 뉴욕에 갈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관람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머시브 극이라는 세계를 알고 난 후로 너무나도 보고싶은 공연이었는데, 슬립노모어를 떠나서 한국에서는 이머시브 극 자체가 아쉽게도 몇 작품 없었고, 그 중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머시브 극도 코로나로 인한 조기 종연으로 표가 취소당했었다. :(


그러다가 작년에 룰렛 이라는 이머시브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일단 이머시브 공연이라는 말에 단숨에 달려갔다.) 이머시브 공연의 진가(?)를 느끼고,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하는 경험에 이머시브 극이라는 장르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말에 (드디어) 뉴욕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계획을 하자마자 바로 일정을 잡은 게 바로 이 슬립노모어이다.


일단 뉴욕 공연 후기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황홀하고, 훨씬 멋있고, 훨씬 심장을 뛰게하는, 그런 극이었다.

공연 덕후인 나에게는... 그저 천국같은 3시간이었다.

꿈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선 관객들은 처음에 입장하자마자 맨덜리 바 라는 재즈 카페 풍으로 꾸며놓은 로비같은 공간에서 기다린 다음에 입장할 때 받았던 카드 번호가 호명되면 호텔(극장)으로 들어가는(올라가는) 시스템이다. 맨덜리 바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던 것이, 맨덜리 바로 들어가는 입구가 완전 암흑으로 된 미로같은 통로이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에 오롯이 의존하여 들어가야 하는 이 방식이, 온 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극을 수용하게 하는 이머시브 극의 시작 장치로서 매우 적절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극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맨덜리바에서 음료를 마시며(칵테일도 파는 거 같았지만 음주관극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거 같아서 나랑 친구는 물만 조금 마셨다) 순서를 기다렸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호명되어 가면을 받고 주의사항을 들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아, 참고로 이 공연은 관객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극을 관람하게 된다. 이는 익명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연출가의 노트를 본 것 같은데, 익명의 관찰자 1이 되어서 호텔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는 것이다. 가면은 다소 흑사병 시대에 의사들이 쓰던 가면처럼 생겼는데(밑에 사진 참고), 이것도 물론 의도된 것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가장 초기의 연극 형태 중 하나인 코메디아 델라르테라는 가면극 장르에서 사용하던 가면같기도 한데, 가면을 사용하면 정형화된 인물이 됨으로써 일종의 자유도 주어지고, '다른 사람' 이 되는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한다. 이런 가면을 배우들이 아닌 관객이 착용함으로써, 자유롭게 리액션도 하고,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시시각각 느끼는 표정을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 꽉 막힌 가면 속에서 주어지는 자유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튼, 가면을 쓴 관객들은 인원이 나누어져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1.


이제부터 정말 극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선, 내가 내렸던 층에는 정교한 세트와 소품들만 있을 뿐, 아무리 돌아다녀도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 으슥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방들을 돌아다니며 분위기에 압도당한 채로 배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10분 가량 돌아다닌 후에 처음으로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워낙 방도 많고 층도 많고 평수도 넓어서 의외로 정말 배우 찾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배우가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사람들 어깨 너머로 처음 마주한 배우들은 맥더프 부부였다. 여자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안아서 쇼파에 눕히고 떠나는 장면이었다. 알고보니 우리가 첫번째 루프 중간에 보게 돼서 맥더프 스토리의 후반부를 본 것이었다.



2.


그 후 돌아다니다가 말콤을 따라 방에 들어갔는데, 정말 방에 자기 혼자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해서 놀라웠다. 10명 가까이 되는 관객들이 밀착해서 본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식도 안 하고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물론 의식 하고 있겠지만 티를 안 내는 것이 정말 연기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으면 의식하느라 아무것도 못 함.) 무튼, 그가 타자기로 무언가 글을 작성하고, 쪽지도 자르고 하는데 뭐라 적혀있나 봤더니 "It will have blood they say, blood will have blood" 라고 적혀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맥베스에 나오는 구절이었는데, 살인은 결국 또 다른 살인을 불러올 것이다... 라며 맥베스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글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3.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자면, 바로 맥베스가 첫번째 살인을 한 후에 충격 속에서 피를 씻어내는 장면이었다. 맥베스 부부의 침실로 돌아온 후 그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레이디 맥베스는 바로 그의 옷을 벗겨준 후에 욕조로 인도하고, 맥베스는 욕조에 들어가서 충격을 받은 듯이 피를 모조리 씻어낸다. 아마 그의 첫번째 죄책감을 보여준 장면 아니었을까?


이 극 제목이 sleep no more 인 이유도 이러한 맥베스의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그가 살인을 한 후에 죄책감에 잠들 수 없다고 했던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4.


이후로 정말 몸이 이끄는 대로 배우들을 쫓아다니며 다양한 장면들을 관람하고.. 특히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통칭 Rave(Second prophecy) 라고 하는 맥베스의 두번째 계시 장면이었다.


맥베스를 따라다니다가 보게 되었는데, 밖에서부터 조명이 번쩍번쩍하고 디스코 음악같은 음악이 나오는, 다소 클럽같은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조명이 켜졌다꺼졌다를 1초마다 반복하면서 배우들은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데, 그 장면이 정말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장센이 멋있었다. 보이 위치라고 하는 마녀 셋 중에 하나가 남자로 등장하는데, 산양 탈을 쓰고 하반신은 나체인 상태로 안무를 하고, 임신한 여자가 애를 낳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피 묻은 아기가 정말 실제 사람같아서 소름끼치기도 하고 여러모로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장면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끝나고 복기해보니 맥베스가 마녀들한테 들은 두번째 예언을 의미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마녀가 불러낸 악령들의 환영을 보여준 것이다. 그 중 한 악령의 말이 '여인이 낳은 자는 맥베스를 해치지 못 할 것' 이라고 하는데, 맥더프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나중에 맥베스를 죽이게 된다. 결국 맥베스 본인의 미래를 보여주는 암시같은 장면이다. 이런 고전 내용을 이렇게 시각화하여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놀라웠고, 그 장면의 강렬함은 영원히 잊지 못 할 것 같다. 왜 다들 두번째 계시 장면을 꼭 관람해야 한다고 하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5.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장면인데,


그 전에, 우선 이 극은 3시간동안 1시간짜리 스토리가 3번 반복된다. 관객들로써 하여금 첫번째 루프에서 놓쳤던 씬을 그 다음 루프에서 관람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루프는 연회장에서 모든 주인공이 모이는 것으로 끝나는데, 마지막 루프때만 엔딩이 다르다.



* 스포 있음 *



맥베스가 죽는 원작처럼, 연회장 식탁 위에 올라간 맥베스는 밧줄에 목을 매고, 옆의 맥더프와 뱅쿠오가 맥베스를 밀어버림으로써 맥베스는 죽음을 맞이한다. 자살같은 타살인 것이다. 맥베스가 관객 방향으로 목을 매고 떨어지는 순간 조명이 꺼지고 극은 끝이 난다. 그러고 몇 초 후에 조명이 서서히 켜지는데, 높은 연회장 무대 천장에서 목이 매달린 채 흔들리며 움직이는 맥베스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인 미장센을 선사한다. 원작과 동일하여 다들 아는 내용임에도 놀라는 이유이다. 나 또한 이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서 정말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엔딩 장면 중 하나라고 손꼽고 싶다.



목 매달린 맥베스 밑으로 관객들은 퇴장하는데, 마지막까지도 기괴하게 끝내는 것이 이 극의 정체성 및 분위기를 한층 더 극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정말 엔딩까지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공연인 것이다.


공연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채로 밖으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벽에 적혀있는 'The All-Telling Tale' 이라는 문구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240313 상하이 McKinnon Hotel


<Sleep no more>



뉴욕에서 첫 슬립노모어를 관람한 후 너무 신선한 충격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하루도 슬립노모어를 잊지 못 하여 결국 3개월만에 상하이행을 결정하였다. (슬립노모어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하이라는 도시도 가게 되었다.)



뉴욕은 그냥 건물로 입장해서 모든 짐 보관과 티켓 교환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상하이는 건물 외부에서 티켓을 받고, 락커에 자율 보관 후 안쪽으로 입장하여 카드를 받는 순서였다.



정말 다행히 30분가량 일찍 온 덕분에 에이스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더 좋았던 건, 한 장은 에이스 한 장은 2를 받아서 걱정했는데 맨덜리바의 옆 자리 커플이 자기들도 그렇게 받았다고 한 장 교환하자고 해서 에이스로 바꿔주었다 ㅎㅎ (홍콩에서 오신 분인가 중국어로 말 걸어서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영어를 하셔서 다행이었음)



무튼, 그렇게 가장 첫번째로 입장.


여기는 뉴욕보다 더 철저하게 일행을 떨어트려놓고 각 층마다 내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이번엔 엄마랑 같이 갔는데, 엄마가 절대 혼자 내리기 싫다고 했지만 결국 강제로(?) 나랑 다른 층에 내리게 되었다.



1.


우선 내리자마자 그 층을 돌아다니다가, 불안해 하고 있을 엄마도 찾으러 갈 겸 다른 층을 구경하고 싶어서 바로 계단을 찾아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위 층에 조금 구석진 곳에 배우로 보이는 사람이 방문 앞에 있는데 마침 관객이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얼른 그 앞에 서있었는데 다른 관객도 와서 그 배우한테 더 가까이 갔는데, 그 배우는 나한테 손을 내밀더니 덥석 내 손을 잡고 앞에 있던 방문으로 같이 들어가버렸다. 다른 관객이 아니라 나를 골라준 것도 너무 기뻤고, 말로만 듣던 원온원(one on one)을 나도 드디어 하는구나. 싶어서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여기서 원온원이란?


1;1 연기 장면을 팬들은 원온원이라고 부른다. 슬립노모어 공간에는 그냥 눈으로 보이는 공간 외에도 정말 수백개의 방이 있는데, 그러한 방으로 배우들이 그 순간 관객 한 명을 데리고 들어가서 1;1로만 볼 수 있는 연기, 장면을 보여준다. 팬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팬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제도(?)가 있는 것은 들었지만, 선택받기도 정말 쉽지 않고, 운도 좋아야 하기에 딱히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는데 확실히 첫번째 루프의 첫번째 순서였기에 사람이 없었던 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원래 대사가 없는 극이지만, 원온원 장면에서는 몇 가지 대사를 말해준다. 거의 극 내의 유일한 대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선택받은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것.ㅋㅋㅋ



그렇게 작은 방으로 들어간 나는, 중국어 대사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배우와 마주보고 서있었는데, 내 가면을 서서히 벗기더니 영어로 대사를 하는 걸 보고 정말 크게 안도했다. 다행히 서양 배우여서 영어 대사를 해주는 듯 했다. 첫 대사는 내가 너무 긴장을 한 탓에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내 가면을 벗기고서는 뒤쪽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날 앉혔다. 그러고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했다. 아마 맥베스의 움직임을 들어보라고 한 것일까? 그러더니 그 방 안의 조명도 어두워지고 스산한 음악도 나오고, 극 중 일어날 비극을 암시하는 듯 한 행동들을 보여줬다. 문 앞에 밀착해서 엿듣는 듯한 모습도 보이면서. 그러고선, 수건같은 흰 천들이 정리되어 있는 책장에서 천들을 약간 옆으로 밀더니 나에게 안쪽을 보라고 보여줬다. 그랬더니, 벽장 안쪽으로 작은 미니어처 방 같은 모형이 있었는데, 큰 침대 한 개랑 작은 쇼파들이 있는, 아주 평범한 호텔 방 같은 방이었다. 그러고선 "Look how lovely it is, isn't it?" 라고 물어보길래 대답해도 되나 싶었지만 웃으면서 약간 끄덕였다 ㅋㅋㅋ 그러고는, 다시 내 가면을 씌워주면서 "It will take time.." 이런 맥락의 말을 해줬다. 아마 (일이 일어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된다고 했던 거 같다. 그러고선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호텔로 복귀. 정말 짧지만 꿈같았던 찰나였다.



그리고 이 인물이 누군지 공연 볼 때에는 몰랐으나, 끝나고 검색해보니 아마 댄버스 역할 인 것 같았다. 혹은 캐서린 캠벨이라고 불리는.


머리를 머리띠처럼 밑으로 땋아서 정리했었고, 옷도 메이드복 비슷한 어두운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우셨다ㅎㅎ) 레베카 스토리의 그 댄버스 이며, 맥키논 호텔의 housekeeper 정도의 캐릭터 인 것 같았다. 그 후에는 거의 못 봤다는 슬픈 후일담... 시작하자마자 원온원 선택을 받아서 아주 기분 좋게 관람 시작 :)





2.


그리고 또 돌아다니다가,


던컨 왕으로 보이는 사람(두번째 관람이라 그런지 이제 어느정도 캐릭터 파악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 경우는 조금 나이대가 있어보이는 배우라서 던컨 왕이라고 생각함)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조금 기다렸더니 맥베스가 와서 침대로 데려가더니 베개로 질식사시키는 장면을 보았다. 뉴욕에서 이미 살해된 던컨 왕만 봐서 살해 장면이 궁금하긴 했는데, 운 좋게 바로 봤다. 침대에서 살해되었길래 방법이 궁금했는데, 베개로 질식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베개를 찢어서 터트리고 깃털이 날려서 죽은 던컨 왕에게 떨어지는데 그 장면도 제법 미장센이 아름다웠다는... 이제 살인자가 된 맥베스를 따라가니 손에 피를 묻히고 나타나 레이디 맥베스에게 가서 그 사실을 밝히고 욕조에서 피를 씻겨주는 장면까지 보았다. 뉴욕 욕조 씬하고 뭐가 다른지 비교하면서 봤다. 큰 욕조가 아니라 거의 세면대 크기의 작은 욕조에 반신 정도만 들어가서 피를 씻더라. 상하이 공간들이 전체적으로 아담해서 그런지, 욕조도 기둥에 붙어있게 작게 만들어서 그 위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방이 작은 건 아닌데 그래도 욕조 정도는 놔둘 수 있었을 거 같은데 (ㅠㅠ) 무튼, 이 씬은 봤던 씬이니까 뉴욕이랑 뭐가 다른지 비교하면서 봤다.


맥키논의 맥베스




3.


그렇게 첫번째 루프는 거의 끝나고,

두번째 루프.


뉴욕에서 보이위치 루프를 한 번도 못 본 것이 아쉬워서 이번엔 연회장 씬 끝나고 보이위치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마 처음 시작인 지 아닌지는 긴가민가 하지만 위치 세 명이 모여서 시작을 했다.


원형 테이블에 셋이 관객들 방향으로 둘러앉아서 관객들을 천천히 돌아가며 응시했다. 그러고선 맥베스가 등장하고, 맥베스에게 첫번째 계시를 하는 장면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예언의 장면 답게, 맥베스는 마녀들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계속 놓치고, 마녀들은 동기화 된 안무를 보여주면서 맥베스를 둘러싸고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고 마지막에, 트럼프카드의 K 카드를 내밀면서 맥베스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보여줬다. Rave, 두번째 계시 장면을 먼저 봐서 그런지 첫번째 계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궁금증 해결.


계시를 받은 맥베스


4.


계시가 끝나고 보이위치 루프를 잠깐 관람했는데,

같은 공간에 있던 약간 높은 단상에 올라가서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때 흘러나오는 곡은 ‘Is That All There Is’ 라고 한다





5.


그러고선 엄마에게도 rave 씬을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맥베스를 따라다니다가 다행히 바로 rave 공간 발견! 뉴욕에선 아니었던 거 같은데 작은 골목같은 복도를 지나가고 위에는 이락원 이라고 한자로 간판도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뉴욕하고 비슷하게 진행 됐고, 공간만 조금 더 작았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과장 조금 보태면 이 씬을 위해 슬립노모어가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멋있다.



6.


그 후에 또 보이위치를 따라갔다.


같은 층의 거리 골목같은 곳을 지나다가, 작은 샤워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안에서 피를 씻어내며 정말 리터럴리 샤워를 하고, 관객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그걸 지켜봤다. 그러고 나와서는 관객들에게 옷을 맡기고, 양말부터 셔츠까지 옷을 입었다.


피를 씻어내는 장면이라고 했던 거 같다.



(순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기억에 남는 장면 순서대로 적고 있다.)



7.


보이위치를 바 공간에서 다시 봤다.


그러더니 포터를 데리고 전화부스 같은 곳에 가서 입을 맞추려고 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듯 한 안무를 보여줬다. 작은 전화부스 안에서 정말 격하게 움직이는 안무가 인상깊었고, 그 장면의 보이위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표정을 정말 잘 쓰더라. 관능적이고도 고혹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8.


다시 위층을 돌다가 어떤 남자 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있고, 하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짐을 정리해주고, 면도를 해주고, 구두를 닦아주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던컨 왕과 그의 아들 말콤이라고 하더라.


면도 하는 와중에도 던컨은 말콤을 믿지 못 하고, 면도 칼이 목 가까이로 왔을 때 자신을 시해하려는 줄 알고 놀라는 모습들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안심한 던컨은 그제서야 웃으면서 말콤에게 장난을 쳤다.


아마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불안함에 떠는 던컨 왕의 모습이었다.


보이첵 오마주인줄은 몰랐다는 후문




9.


세번째 루프때는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서 짧게 짧게 돌아다니면서 서브 캐릭터들도 많이 봤다.


어떤 남자를 따라가다가, 눈 앞에서 원온원을 놓치고 너무 궁금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세번쨰 루프도 끝이 났다.



10.


가장 기다렸던 마지막 루프의 연회장 씬.


맥베스가 목 매다는 장면의 전율은 봐도 봐도 짜릿하다.


목 매달려 떨어지는 순간, 놀라는 관객들의 리액션도 정말 볼만했다. ㅋㅋㅋ



그렇게 극이 끝나고 서서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회장 뒷편에서 보고있던 내 어깨를 누가 턱! 하고 잡는 것이었다.



이전에 스태프가 비켜달라고 내 어깨를 잡은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스태프인가? 하고 봤더니 배우 같은 남자가 손을 내밀더니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옆에 엄마랑 같이 서있었는데ㅋㅋㅋ 엄마에게 무언의 사인을 남기고... 그 남자를 따라갔다. 아마 계단을 올라?갔던 거 같은데, 맥베스 방 있는데까지 갔는데 나랑 비슷하게 배우들이 한명씩 관객을 골라서 손을 잡고 호텔 공간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다른 관객이 길 막고 있으면 비켜달라고 하고 우리를 데려가고 ㅋㅋㅋ 그렇게 한 바퀴를 손잡고 돈 다음에 다시 맨덜리바로 돌아와서 사람 없는 구석에 데려가더니 마주보고 씨익 웃으면서 눈 마주치고 내 가면을 벗겨주고 퇴장해버렸다. 이런것도 원온원인가? 싶지만 뉴욕에서는 없었던 거 같은데, 제법 황홀하고 설레는 경험이었다. 원래는 사람 눈 오랫동안 잘 못 쳐다보는데 뭔가 이번엔 그 눈빛을 오로지 느끼고 싶어서 그런지 댄버스 원온원때부터 눈 절대 안 피하고 똑바로 쳐다봤다 ㅋㅋㅋ. 이 엔딩까지도... 아이컨택 하며 씨익 웃으면서 가면 벗기는데 어떤 반응을 해야하나 싶어서 나도 미소 지으면서 작게 씨에씨에. 하고 목례를 했다 ㅎㅎ 사실 이 분을 극에서는 만난 적이 없어서 무슨 캐릭터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나중에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Yi bin씨 였던 거 같다. 그 때의 그 눈빛 절대 잊지 못 할거야.


+ 찾다보니 이 분이 뱀신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뱀신부랑 뱀신랑의 그 신랑이구나.

중국 설화 뱀신부에서 따온 캐릭터라 뉴욕에는 없고 상하이에만 있다고 한다.



황홀한 경험 선사해줘서 고마워요 진심으로



배우의 눈빛을 오롯이 이렇게 몇 초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래서 슬립노모어가 사랑받는 거겠지


관객 개인개인에게 황홀함을 선물해줘서



무튼,


이 극을 보면서 나는 정말 공연이 주는 울림을 사랑하는 구나,


공연예술만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런 장르구나 하고 다시금 느낀 거 같다.



그 어떤 다른 장르의 다른 자극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을 공연은 선사해주는 듯 하다.



이렇게 맥키논 방문기까지 끝!


상하이는 정말 조만간 다시 가고 싶다.


아니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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