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에 관련된 여러 카테고리의 책을 접하다 보면 이제 더 이상 UX의 창시자가 도널드 노먼이라는 생각에 의문이 생긴다. UX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맞지만 그 개념까지 그가 창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UX는 다른 명칭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 온 하나의 방법론의 한 방식이다.
그건 당신의 세계관이지 모두의 세계관이 아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에단 헌트(톰 크루즈)는 변장술에 능하다. 한 명의 사람이 가면을 쓰고 여러 모습으로 바뀌지만 그가 매번 다른 사람일리는 없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동일한 사람이다. UX도 그렇다. UX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인류학에서 UX는 민족지학이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민족지학은 인류학에서 다른 민족의 문화를 파악할 때 사용하는 참여관찰 도구다. 민족지학은 오랜 기간 다른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해당 문화의 연구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ㆍ기록하는 학문이다. UX의 사용자 관찰과 동일한 개념이다. 민족지학은 1960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UX가 출현하기 훨씬 전이다.
인류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인류학자다. UX 또한 인간을 연구한다. 하지만 UX를 학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UX학자라는 명칭은 매우 생소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UX학자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UX는 방법론에 더 가깝다. 기존 인류학에서 검증된 가설들을 마켓에서 상업적인 판매에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상황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인류학에서 하나의 가설을 만들고 증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업은 인류학과 같이 가설 증명을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류학에서 검증된 가설을 빠르게 적용해 볼 수는 있다. 그렇게 증명된 가설들을 상업적인 판매에 적용해 특정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지를 빠르게 확인해 보는 것이 UX다. 인류학에서 이미 검증된 가설을 마치 UX를 통해 최초로 발견한 듯한 가설들을 여럿 보게 된다. 인간은 같은 얘기라도 새롭게 재포장해서 들려주면 더 흥미로워한다. UX는 인류학의 한 부분을 새롭게 재포장해 등장한 용어다. 인류학자는 한 민족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그 문화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UX 디자이너들 또한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서 제품을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은 서로 다른 가면을 썼지만 그 안에 핵심은 동일하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킷캣(네슬레의 글로벌 초콜릿 브랜드)은 지극히 영국적인 상품이었다. 킷캣은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잠깐 쉬세요, 킷캣과 함께"와 "영국에서 가장 소박한 한 끼"라는 문구로 광고되었다. 이후 1970년대 킷캣에 영국 상표를 달아 여러 국가로 수출했고 그중에 일본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판매는 부진했다. 너무 달아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 컸다. 이후 킷캣은 스위스 네슬레에 인수 됐다. 2001년 일본의 킷캣 브랜드를 담당하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특이한 현상이 포착됐다. 규슈 지방에서만 판매량이 12월과 1월 2월에 급증한 것이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으나 '킷캣'이라는 이름이 규슈 지방의 방언으로 '반드시 이길 거야'라는 의미의 키토카츠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2월과 2월 사이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시가 치러질 때 규슈의 학생들이 행운의 징표로 킷캣을 산 것이다. 처음에는 고베(스위스의 지명)의 레슬레 일본 지사에서는 이런 문화의 현상이 실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슬레의 경영진은 일본의 판매 부진으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일본에서는 "잠깐 쉬세요"라는 마케팅 메시지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의 마케팅 팀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잠깐 쉬세요"라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진을 한 장 골라 보드에 붙이고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생각을 설명하게 했던 것이다. 미국의 마케팅 업계에서 20세기 후반에 처음 출현한 이 방법은 민족지학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서구의 기업은 문화충돌을 겪을 때가 많아 이 방법을 자주 활용했다.
일본 청소년들은 주로 음악을 듣거나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잠을 자는 사진을 골랐다. 초콜릿을 먹는 사진을 고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의 수험생들은 초콜릿을 먹는 것이 '잠깐 쉬는'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휴식은 제대로 푹 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네슬레 마케팅 책임자 타카오카 코조는 이시바시 마사후미와 마키 료지를 비롯한 동료들과 "잠깐 쉬세요."라는 문구를 줄이고 벚꽃 사진과 함께 "반드시 벚꽃이 필 거야!(꼭 합격할 거야!)"라는 문구를 넣기로 했다. 스위스 브베의 레슬레 본사 경영진들이 이 이미지를 봤다면 그냥 이쁜 사진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벚꽃은 입시 합격을 상징했다. 일본 레슬레로서는 스위스 본사의 브랜딩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킷캣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들은 입시장 부근 호텔 측에 부탁해서 투숙객들에게 "반드시 벚꽃이 필 거야!"라고 적힌 엽서와 함께 킷캣을 공짜로 나눠주게 했다. 훗날 이시바시는 이 상황을 네슬레 본사에 구체적으로 보고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분명 이상하게 볼게 뻔했기 때문이다. 킷캣의 판매는 급증했다. 학생들은 킷캣을 오마모리(일본 신사에서 신도들에게 파는 행운의 부적)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화의 상대성이다. 영국에서 탄생한 킷캣의 노동자들에게 "잠깐 쉬세요"라는 문구는 일본에서 통하지 않았다. 반대로 벚꽃은 서구권에서 합격의 의미가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현지 문화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인류학적 방법으로 증명한 셈이다. 2003년 일본의 인터넷 포털 구(Goo)에서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 무려 34%의 학생들이 킷캣을 오마모리(행운의 부적)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 부적을 사용하는 비율인 45%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에 힘입어 일본 킷캣은 엄청난 확장을 했다. 2003년 딸기 맛 분홍색 킷캣, 말차 맛의 킷캣, 와사비 맛, 간장 맛, 옥수수 맛, 자두 맛, 멜론 맛, 치즈 맛, 버터 맛 킷캣이 출시되었다. 말차 맛의 킷캣은 역으로 글로벌로 제품으로 출시 됐다.
알고 있다는 착각[질리언 테트]에서 문장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스위스 브베의 경영진은 새로운 킷캣에 감명받아 상상하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키토카츠 광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일본의 담당자들에게 글로벌 마케팅 전략팀을 맡긴 것이다. 일본인이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은 최초였다. 이시바시는 스위스 동료들에게 청소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비자들, 현지 소비자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게 중요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그냥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는 해당 지역의 문화에 맞게 이미지 전략을 현지화해야 한다. 이것 또한 UX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용자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UX를 아직까지 사용자 관찰, 분석, 인지 심리학이라는 작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UX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또 UX라는 방법론을 정형화시켜 어떤 불변의 법칙처럼 이해하는 것도 UX의 한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UX를 넘어 인류학의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학의 가설들은 UX에 적용해 볼 수 있다. UX는 새로운 학문이 아니다. 인류학에서 증명된 가설을 활용해 성과를 달성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이 UX다. 그래야 당신의 사고방식이 확장할 수 있다.
참고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