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지 않는 디자인을 출간한 지 1년, 이 책의 시작은 한 아티클에서 시작 됐다. 2019년 5월 21일 '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아티클을 발행했다.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꽤 많은 공감을 이끌었고 4년 뒤 이 아티클의 제목이 2023년 5월 30일 처음으로 출간한 내 첫 책의 제목이 되었다. 이 아티클을 바탕으로 브런치 북을 만들었고, 운 좋게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디자인을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소재로 의식적인 기록을 했습니다. 사수가 없던 주니어 시절 실무에 대한 답답함을 선배들의 글을 찾아보며 해소했던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 이야기가 누군가의 답답함을 해소하길 바랍니다. 디자인에 대해 말하지만 꼭 디자이너들만을 위한 글은 아닙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출간 1년
다시 보는 '늘지 않는 디자인'
디자인을 하면서 디자인 역량이 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런 불안과 자괴감을 겪으며 성장했다. 내가 처음 입사한 에이전시는 규모가 작은 에이전시였다. 동료 디자이너도 적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약 2년간 사수가 없었다. 그 2년 사이 아무리 노력해도 디자인은 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목표를 설정해 주고 그 과정에 대해 지도해 주는 사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거라 생각한다. 목표는 디자인 자체가 아닌 무엇을 왜 디자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말한다. 시안 작업을 할 때면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몰랐다. 초보 주니어 디자이너가 사업 목표를 이해하고, 디자인 전략을 시안으로 표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레이아웃만 이리저리 옮기면서 정확한 목표 없이 시간만 허비했던 기억이 가득하다. 주니어 시절에는 이쁘고 멋있는 게 디자인이라는 착각에 빠졌었다. 주니어 시절 아트웍에만 빠져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이미지와 좋은 폰트 좋은 레이아웃은 시안을 순간 멋지게 보이게 한다. 대분은 그런 빛 좋은 개살구에 넘어가지만, 목표가 명확한 클라이언트나 디렉터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목표에 부합하여 기능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그때는 디자인이 정보의 맥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이다. 디자인은 목표 달성을 위한 정보의 전달이다. 정보 전달 과정을 설계하고 작동하게 하는 것이 UI 디자인이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규모가 좀 더 큰 에이전시로 이직하면서 알게 됐다. 모든 학문은 스스로 깨우치기가 어렵다. 간혹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디자인이 늘지 않는 건 개인의 문제이기보다 환경의 문제일 수 있다. 이직 후 디자인 역량이 향상된 것은 에이전시의 규모가 더 커서가 아니다. 날 이끌어 줄 사수와 디렉터 그리고 목표의 정확한 이해였다. 다행히 이직한 에이전시에는 목표를 이해시켜 줄 훌륭한 사수와 디렉터가 있었다.
이직 후 회사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2년 차였지만 제대로 된 기본기가 없었던 탓인지 사수와 디렉터의 요구를 잘 따라가지 못했다. 당연히 시안에 투자하는 시간 또한 길어지게 되고, 기존 에이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경쟁구도 또한 맛보게 됐다. 사수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치열했다. 누군가의 수상 소식은 누군가의 위축을 불러왔고, 야근 없는 퇴근은 스스로 경쟁을 포기하는 선언과 같았다. 그렇다고 누가 누군가를 비방하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사수들의 경쟁은 사실 디자인에 대한 엄청난 몰입이었다. 시안 작업에 들어가면 사수들은 굉장히 많은 시간을 시안에 투자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투자하는 시간은 대부분 소모적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철야에 적극적으로 투입시키지 않았다. 그래도 꽤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그렇게 퇴근할 때 어깨너머로 본 사수들의 시안은 다음날 출근하면 하룻밤 사이 눈에 띄게 디벨롭되어 갔다. 어떻게 그런 몰입이 가능할까?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과제와 실력의 함수 관계에 따른 경험의 질에 대에 언급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몰입은 두 변수가 모두 높을 때 나타난다.
실력이 낮고 과제는 높았던 나는 항상 걱정과 불안이 먼저였고, 각성을 거처 몰입을 체험하게 됐다. 걱정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수와 디렉터의 지도가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사수와 디렉터의 중요성이 그 이유이다. 과제는 목표로 해석할 수 있는데 목표가 명확하고 개인의 실력, 즉 역량이 높을수록 몰입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몰입으로 이끌어줄 사수와 디렉터 그리고 명확한 목표가 중요하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단계의 경험을 체험한 사람이 이후 행복감이나 삶의 질면에서 우수하다고 얘기한다. 디자이너가 몰입의 경험을 자주 접하게 되면 스스로 동기부여와 일에 대한 재미 그리고 자신감이 커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몰입 자체가 아닌 몰입으로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다. 디자인이 늘지 않을 때 지금 자신의 환경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신기하게도 나는 학창 시절 공부하기 위해 오래 앉아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디자인 몰입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자주 밤을 새우곤 했는데 그 경험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밤새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몰입 단계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야근과 철야를 근로 노동법 위반의 관점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야근과 철야에 대한 합리화도 아니다. 철저히 몰입에 대한 관점에서만 이해하길 바란다. 지금 당신은 몰입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디자인이 늘지 않는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다.
디자인을 하면서 고난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수와 디렉터 그리고 명확한 목표가 있다고 한들 실력의 한계는 언제나 찾아온다. 나는 그 한계를 디자이너의 고난 지점이라 한다. 그 고난을 이겨내면 다음 단계로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괴감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감 또한 곤두박질친다. 이 고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퀘스트와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퀘스트를 거쳐야 하는 건 인생 불멸의 진리다. 목표가 있다면 퀘스트를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그래야 성장한다. 다시, 디자이너의 고난 지점에 대해 설명하면 조직행동론 전문가 칩 히스, 댄 히스는 [스위치]에서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IDEO의 프로젝트 분위기 그래프라는 것을 언급했다. 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나타는 현상에 대한 그래프다. 그래프는 U자 모양으로 왼쪽에는 '희망'이 쓰여있고 오른쪽에는 '자신감' 그리고 그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은 '통찰력'이라 적혀 있다.
IEDO의 CEO 팀 브라운은 디자인을 할 때 "정상에서 정상으로 우아하게 뛰어서 옮겨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바로 통찰력이 곤두박질치는 지점이 내가 말하는 디자이너의 고난 지점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희망과 낙관적인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통찰력 단계에서는 낙담하게 된다. 그 이유는 통찰력은 언제나 단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절과 회의로 가득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면 엄청난 추진력이 생겨나게 된다. 새로운 디자인을 시험해 보면서 계속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 간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자신감의 봉우리에 오른다고 한다. 디자이너는 고난을 극복해야만 자신감 봉우리로 올라설 수 있다. 시안 작업 중에는 여러 상황이 생긴다. 시안에 대한 부담과 아이디어에 대한 고통으로 그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나는 시안 작업을 할 때면 굉장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또 그런 디자이너를 바라볼 때면 안쓰럽다. 그 고난 지점이 누군가가 구원해 줄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안쓰럽다. 스스로 올라올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줄 수는 있어도, 한발 한발 올라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모든 디자이너가 고난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길 기원한다.
늘지 않는 디자인에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디자인을 하는 것일까? 디자인은 나에게 무엇인가? 하라 켄야는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디자인의 정의 그리고 그 매력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 문제의 발단을 사회에 두기 때문에 그 계획이나 과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도 디자이너와 같은 시점에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이나 정신이 태어나고, 그것을 공유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감동이 디자인의 매력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직장이라는 소속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누구나 직장에 다니지만 그것으로 본인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는 쉽게 생각지 않는다. 대부분 본인의 생계와 성장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고 좀 더 나은 삶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내가 사회 속에서 기여하는 방식은 디자인이다. 그렇다 나는 디자이너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내 삶 속의 디자인이다. 그렇게 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다 보니 지금까지 디자인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 과정에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따르지만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소속감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지속하게 한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은 나를 디자인에 몰입하게 한다. 한해 대학에 입학하는 디자인과 학생은 수만 명이다. 그 사실은 한해 졸업하는 학생의 수도 수만 명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와 목표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들어서게 된다. 그 수만 명이 바로 좋은 직장 또는 의식적인 디자인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몰입하고 고난 지점을 지나다 보면 어느샌가 그 영역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논리와 목표를 기반으로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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