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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Jan 28. 2020

내가 만난 클라이언트의 유형.

클라이언트를 규정하면 에이전시에서는 고객사가 될 수 있고, 인하우스에서는 최종 결정권자 또는 상위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01. '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알아맞혀 봐' 스무고개형

당시 트렌드 열풍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 중인 브랜드였다. 일단 경쟁 PT에서 수주는 했으나, 10개가 넘는 구축 시안을 계속 작업했다. 이유는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가 전혀 니즈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A시안을 잡아가면 콘셉트가 너무 약한 거 같다며, B시안을 요구하는 식이였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체 총 10개가 넘는 시안을 작업했던 거 같다. 시안 리뷰 시 문제점을 개선하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경우는 대게 기존 채널을 리뉴얼할 이유가 없을 때 생기는 상황이다. 기업은 연초 예산을 편성한다. 그리고 그 예산을 계획에 맞게 소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년 예산을 편성받지 못할 수도 있다. 12월이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이유와 같다. 이 브랜드의 프로젝트도 예산 소진의 목적이 컸지, 기존 채널의 문제가 있어 리뉴얼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 담당자 또한 명확한 방향이 없었다. 즉흥적으로 본인 마음에 드는 시안이 나올 때까지 시안 작업을 진행하게 했다. 결국 마지막 시안을 선택하긴 했지만, 사내 품평회를 열어 시안에 대한 수정사항을 취합했다. 당시 해당 브랜드의 몇 명 사원들이 리뉴얼 목적이 뭐냐고 담당자에게 물어 주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목적 없는 프로젝트는 스무고개의 시작이다.




02. '모든 것을 혼자 꾸민', 카이저 소제형

글로벌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이다. RFP를 검토했을 때 굉장한 개발 리소스 투입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때 제안 TF 모든 구성원들이 '이거 진짜 하는 거 맞냐며' 의문을 가졌었다. 나 또한 이 글로벌 브랜드가 국내에 이 정도 비용을 투자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제안에 참여의사를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했고 제안 작업을 진행했다. 온라인 채널 치고는 사업비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제안에 참여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제안 PT가 마무리됐지만,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는 차일피일 우선협상 대상자 발표를 미루었다. 그렇게 제안 PT가 끝난 지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다 되어도 발표를 아직 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아직 검토 중이라는 피드백만 돌아왔다. 결국 한 달 이상이 지나고 제안에 실주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제안에 실주할 수 도 있다. 모든 제안을 수주하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때 제안 PT에 참여한 업체 중에 우선협상 대상자 아무도 없었다. 그 점을 이상하게 여겨 알아본 결과, 그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었고, 본사에 예산 또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생각이었는지 보고와 승인 없이 제안 PT를 진행했고, 제안이 괜찮으면 본사에 보고해 예산을 편성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사는 그 정도 사업비를 투자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03. '제안은 됐고,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줘', 고객은 왕이다형

일단 제안 PT를 통해 수주를 했다. 구축 작업을 진행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디자인 운영 담당자와 크고 작은 의견 차이가 있었다. 일단 트렌드를 싫어했다. 그럴 수 있다. 트렌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운영 담당자는 추후 운영을 함에 있어 디자인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임원급 프로젝트 최고 결정권자는 브랜드의 프리미엄이 더 돋보이길 원했다. 우리 또한 동감했다. 하지만 디자인 운영 담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톤 앤 매너를 요구했다. 브랜드 운영 담당자는 운영 리소스가 더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운영 리소스를 최소화할 수 있게 가이드를 잡아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기존의 스타일은 브랜드 관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디자인 운영 담당자는 브랜드의 관리보다 자신의 일이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제안해주는 입장에서 브랜드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렇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영 스타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는 임원급 최고 결정권자가 요청한 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임원급 결정권자는 초반 주간회의에만 참석하더니 이후 사라져 버렸다. 여러 번 설득했지만, 왜! 해달라는 대로 안 해주냐는 소리까지 나와서 결국 포기했다. 디자인 운영 담당자가 키를 잡는 순간 제안 시 톤 앤 매너는 무너지고 점점 리뉴얼 하기 전의 스타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결국 임원급 최고 결정권자가 원하는 프리미엄을 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04. '사실 나는 키맨이 아니었어, 감쪽같이 속았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어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누가 키맨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 이유는 결국 키맨의 의도대로 프로젝트가 흘러가고 또는 설득할 필요가 있을 때 키맨만 설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항상 키맨을 찾아야 한다. 키맨이 직급이 높다는 편견은 버려라. 직급이 높아도 실무진의 결정을 더 존중하는 조직도 있다. 금융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이다. 임원급 담당자가 프로젝트 전반을 진두지휘했고, 우리 모두는 그 사람을 키맨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안이 수차레 뒤집히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유는 그 사람이 키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무진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고 계속 자신 혼자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계속되는 시안 작업으로 자의 반 타의 반 그 임원은 프로젝트에서 하차했고, 실무진중 한 명이 키를 잡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전해 듣기로는 그 임원이 많이 삐져있는 상태라고...




05. '할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알아', 사람 잡는 선무당형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모른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항상 등장하는 멘트가 '할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알아'라는 말이다. 어떻게 할 줄 모르는데 볼 줄은 아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글을 쓸 줄은 모르는데 읽을 줄은 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만, 그것에 대해 묻고 따지고 들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논리는 항상 시각적인 부분에만 국한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소스 코드에 대해서는 아무도 훈수 두지 못한다. 그것은 로직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훈수두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다르다. '요걸 이색으로 바꾸고', '네모를 세모로 바꾸고' 얼마든지 참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아는가? 색과 모양에도 원리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선무당들은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본인의 감을 믿기 때문이다. 그 감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무당들은 내 감을 믿고 시안을 수정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본인의 감이 반영된 시안을 보면 선무당들은 매우 흡족해한다.




06. '밑도 끝도 없다', 내 멋대로 한다형

지금 말하려는 프로젝트는 지금 생각해도 어둠의 기운이 상당히 느껴진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였기 때문에 럭셔리를 굉장히 강조하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담당자는 전혀 럭셔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제품의 라인업을 글로벌 기준을 무시한 채 담당자 마음대로 카테고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라인업 구성은 글로벌 비즈니스 정책이다. 우리는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고 글로벌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왜 항상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카테고리를 구성했다. 당시 담당자의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것이 문제가 될 일은 없지만, 경력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도 영민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담당자는 그렇지 않았다. 또 글로벌 브랜드의 사이트들은 당시만 해도 많이 방치된 상태였다. 리뉴얼 후 수년 동안 관리가 되지 않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많았다. 담당자는 그런 사이트들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결국 관리되지 못한 낙후된 사이트들을 롤모델로 삼았다. 결국 해당 브랜드의 사업부장의 출현으로 어느 정도 난장판이 정리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이는 사람을 대할 방법은 없다.




07. '내가 모르니까 전문가를 고용했지', 알아서 해주세요형

시안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대표 및 임원 보고를 진행했다. 시안 리뷰 시 프로젝터는 색이 거의 날아가기 때문에 디자인 디테일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표님 앞에 노트북을 놓아 드리고 기획자 한 명이 시안 리뷰 순서에 따라 화면을 바꿔가며 진행했다. 항상 그렇듯 임원들의 이런저런 피드백이 오고 갔다. “텍스트가 가독성이 떨어지는데요?”, “프로젝터라 그래요. PC 디스플레이에서는 잘 보여요.” 그러자 항상 그렇듯 동료 임원을 끌어들인다. “안보이지 않아?” 여러 임원이 합세해 여기서 안 보이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게 맞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대표님이 “여기서는 잘 보여” 또 웅성웅성. 그러자 대표님은 앞에 놓인 노트북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잘 보인다니까.” 상황은 정리된 듯 보였다. 그렇게 순탄할 줄 알았지만 임원들이 갑자기 디자인을 하기 시작한다. 컬러가 어떻고 비주얼이 어떻고, 총괄 PM이 당황하며 태세를 전환한다. "그럼 컬러는 어떤 색이 좋을까요?" 그렇게 디자인을 즉흥적으로 하기 시작하는데, 묵묵히 어쩌면 건성건성 지켜보던 대표님께서 또 한 마디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전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우리한테 컬러를 물어보면 우리가 어떤 컬러가 좋은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우릴 바라보며 “당신들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하세요.”




세상에는 많은 성향의 클라이언트가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성향의 클라이언트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결과물의 퍼포먼스는 올라간다. 그 이유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와 제작하고 개발하는 실무진의 목표가 같아야 한다. 목표가 같아야 커뮤니케이션도 의미가 있다. 내가 말한 유형의 클라이언트들의 주요 특징은 목표를 명확하게 공유하기 어려울 때 나타는 유형들이다. 목표가 명확하고 그 목표를 위해 서로 소통하며 좋은 결과로 이끄는 그럴 때가 프로젝트의 보람을 느끼는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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