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간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실행할 수 있는 비용이 없다면 그냥 좋은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꼭 돈이 많아야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서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돈이 없어서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 못하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에서 흔히 '크게 생각하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큰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반면 비용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전제로 하게 되면 크게 생각할 수 없다. 아이디어의 실행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것을 실행할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사고방식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돈이 있어도 마지막 세 번째인 사고방식이 맞지 않다면 좋은 아이디어는 실행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이 UX다.
지출 없는 UX는 없다.
에어비앤비 창업스토리는 유명하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숙소를 제공하고 아침에 ‘오바마와 매케인 시리얼’을 만들어 팔면서 시작됐다. 처음에 시리얼 회사 켈로그와 협업을 통해 공식적인 오바마 켈로그 제품을 판매하려 했지만 켈로그는 당연히 이 제안을 무시했다. 그러자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은 마트에서 시리얼을 사 와서 시리얼 박스에 오바마와 매케인을 인쇄해 수작업으로 패키지를 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은 굿모닝 아메리카와 CNN에 보도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에어비앤비가 와이 콤비네이터(스타트업 육성기관)로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굉장히 적은 비용으로 아이디어를 실행해 성공한 사례다. 그들은 충분한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를 실행했다. 그 후 에어비앤비는 호스트들을 섭외하고 숙소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방이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해 고민했고 문제점을 발견했다. 자신들의 플랫폼에 올라오는 숙소의 사진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호스트들이 올리는 숙소 사진의 퀄리티는 굉장히 떨어졌다. 호스들이 자신들의 숙소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어 올리는 게 문제였다. 에어비앤비는 5천 달러를 들여 전문 사진작가를 고용해 호스트들의 숙소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용을 들여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은 사고방식이 좌우한다. 당시 에어비앤비의 재정을 고려한다면 사진작가를 고용해 호스트들의 숙소 사진을 찍어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그들이 비용을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객 입장의 사고방식이 그들과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방을 직접 예약해 생활해 본 게비아(에어비앤비 공동 창업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사용할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예약을 할 리가 없었다.”라는 평을 남겼다.
참고자료
디커플링 [탈레스 S. 테이셰이라]
1999년 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소매 체인을 개발할 책임자를 찾았다. 그렇게 론 존슨이라는 사람이 애플스토어 개발 책임자가 되었다.
애플스토어의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존슨은 불현듯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주요 제품 중심으로 애플 매장을 구성했다. 매장의 내부가 파워 맥 구역, 아이맥 구역, 아이북 구역, 파워북 구역 등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잡스는 '모든 디지털 활동의 허브가 되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컴퓨터로 카메라에 든 사진이나 동영상을 편집하고, 뮤직 , 잡지, 책 등도 컴퓨터를 통해 이용한다는 개념 있었다. 존슨은 매장을 제품군 중심으로 구성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행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영화 구역을 마련해 그곳에 아이무비 소프트웨어가 구동되는 여러 대의 맥과 파워북을 설치하고 사람들에게 컴퓨터로 비디오카메라의 영상을 불러들여 편집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6개월의 설계 기간이 지난 터라 행위 중심으로 매장을 재구성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존슨은 잡스에게 제품 중심이 아닌 행위 중심으로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잡스가 폭발했다. "나는 이 매장에 6개월이나 꽁무니 빠지도록 매달렸는데 이제와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말이오?" 존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이 흘렀고 둘은 애플스토어의 회의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회의가 시작하자 잡스가 말했다. "론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매장을 잘못 만들었습니다. 그는 매장이 제품 중심이 아닌 사람들이 하고 싶은 행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잡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이 옳습니다." 잡스는 예정된 공개일이 3~4개월 지연된다고 해도 매장의 설계를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잡스는 회의에 모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가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단 한 번뿐인 기회입니다."
애플스토어 설계 과정을 보면 애플은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비싼 장소에 가장 비싼 자재들로 설계를 했고, 마지막에는 기존 설계를 뒤집어 다시 설계했다. 과연 애플이 돈이 많아서 설계를 뒤집는 결정을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애플스토어를 제품 중심이 아닌 사용자들의 행위 중심으로 설계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사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돈이 많아서 사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자료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넷플리스는 초창기 여러 번의 도산 위기를 경험했다. 넷플릭스는 2000년 초 적자가 계속되자 블록버스터라는 비디오 대여점에 매각을 하기 위해 몇 달을 공들였다. 당시 블록버스터의 기업가치는 60억 달러였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CEO 존 안티오코와의 첫 만남에서 매각 금액 5천만 달러를 제시했다가 거절당한다. 지금의 넷플릭스와는 굉장히 대조되는 일화다. 넷플릭스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사용자 중심이다. 그들의 서비스의 커버 이미지는 모두 가공을 거처 업로드된 것이다. 비디오의 타이틀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했고 매력적인 포스터의 컷들을 그대로 사용해 디바이스에 최적화시켰다.
이 또한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커버를 보여주기 위해 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반면 다른 서비스들은 스틸컷을 사용하기도 한다.
스틸컷은 가공이 필요 없어 적용하기 편하다는 장점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큰 차이가 있다. 넷플릭스는 왜 디바이스에 맞게 그리고 매력적이게 비디오의 커버 이미지를 가공할까? 또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와 영화도 만든다. 각 현지 최고의 작가를 고용하고 최고의 회사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 인재들을 빨아들인다. 그것에 사용되는 비용은 수백에서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 과연 넷플릭스는 돈이 많아서 그렇게 하는 걸까?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의 퀄리티는 매우 높다. 그래서 여러 영화제에 출품을 하는데 영화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의 행보가 달갑지가 않다. 그들은 넷플릭스의 영화는 영화관을 통해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제 후보에 오를 수 없다는 논리로 배척하자 넷플릭스는 영화관을 인수한다. 이제 넷플릭스의 영화를 개봉할 영화관이 확보되었다.
과연 넷플릭스는 돈이 많아서 그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넷플릭스의 사고방식은 기존의 기업들과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성장을 위해 많은 돈을 써야 한다면 또 그것이 합리적인 것이라면 사원급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는 성장을 위해 철저히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결정한다. 당장 단기간의 성과가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UX를 위해 투자하기를 꺼린다. 대신 UX를 활용해 성과를 올리기를 바란다. 굉장히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참고자료
규칙 없음 [리스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수년 전에 신선 브랜드의 모바일 커머스를 구축한 경험이 있다. 당시 UX예산이 없던 나는 회사 내부의 인원들을 상대로 리서치를 실시했다. 기존 입사자가 아닌 신규로 입사한 분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 신선 식품의 브랜드는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트렌드에 맞춰 모바일 커머스 구축의 필요성을 느꼈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브랜드의 담당자가 걱정하는 것은 PC의 매출이 모바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PC의 트래픽이 모바일로 옮겨 갔으니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제품 사진만 노출하지 말고 조리가 된 연출된 매력적인 이미지 리소스도 확보하자. 그러자 그건 비용이 들고 운영함에 있어 번거롭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담당자는 최대한 노력하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담당자의 요구를 들어줄수록 퀄리티는 점점 떨어져 갔다. 또 리서치를 통해 캐치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리서치 중에 제일 많이 나온 내용이 유통기간이 짧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피드백이었다. 그래서 후에 재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신선제품은 일반 가공제품 보다 유통기간이 짧다. 그래서 판매되는 제품에 유통기간을 모바일 푸시 알람을 통해 알려주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브랜드의 내부 기술 담당자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추가 개발을 이슈가 있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다는 답을 줬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지만 구현하지 못해 아쉽다는 답변을 했다. 그렇게 나는 비용 발생이 없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그렇게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애착은 식어갔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돈이 들지 않는 아이디어였다.
돈을 들여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조직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용자를 위한 가치 창출이 성과로 또 수익으로 이뤄진다는 확신, 그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가치 창출이 성과로 이어지는 성공사례 또한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비용을 들여 실행한다. 그리고 사고방식의 제일 정점에 있는 사람은 최고 경영자인 조직의 CEO다. 사실 에어비앤비, 애플, 넷플릭스가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사용자 경험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사고방식의 정점에 있는 CEO가 있기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고방식과 맞는 사람들을 조직으로 불러들인다. 또 불러들인 사람들이 조직의 사고방식과 맞지 않다면 단호하게 내보낸다. 단호한 해고가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이 사용자 경험을 위한 사고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단호한 방법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조직들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성공 사례가 없고 사용자 경험에 대해 비용을 투자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 설계를 통해 성과를 창출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UX 조직을 만들어 놓고도 예산을 투자하지 않는다. 사용자 경험을 분석하고 설계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고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도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마치 사용자 경험은 비용이 들지 않는 시각적인 부분인 것으로 착각한다.
사고방식도 확장된다. 사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의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벌어진다. 예를 들어 이미지 촬영으로 비용을 쓰는 것이 아까울 수 있다. 또 이미지를 가공해서 사용하는 것에 부담감이 들 수 있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디테일들이 하나씩 누적되고 쌓이기 시작한다면 3년 후, 5년 후에는 그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을 것이다. 사고방식은 사소한 것에서 큰 것으로 확장된다. 에어비앤비도 애플도 넷플릭스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사고방식이 확장되었다. ‘돈만 있으면 우리도 저렇게 하겠다’ 또는 ‘돈이 없어서 우리는 저렇게 못한다’라고 말하는 조직은 돈이 있어도 사고방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절대 저렇게 할 수 없다. 반면 사용자 중심 사고방식의 조직이 돈이 없다면 돈을 만들어서라도 저렇게 한다. 사용자 경험은 그에 맞는 비용을 쓰지 않는다면 얻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결정은 CEO의 사용자 중심 사고방식에 의해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