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UX였다.
토요일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출출함에 못 이겨 매일매일 다짐했던 야식을 먹지 않겠다는 의지를 누르고 치킨과 맥주를 주문한다. 그렇게 SBS 연예대상을 보며 맥주 한두 잔이 목구멍을 뚫고 지나가니 몽롱해지는 머리는 이유모를 옛 추억이 생각난다. 어릴 적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까? 부모님 모두 일하러 나가시면 형과 항상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이 다되어서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집 안의 형광등을 켜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점심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 시절 우리 형제의 점심 끼니는 100원이었던가? 150원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200원이 넘지 않는 라면 1 봉지를 반반씩 나워 먹은 뒤 찬밥을 말아먹는 걸로 끼니를 때웠다. 라면을 물리도록 먹었던 사람들은 라면 냄새도 맡기 싫다고 하지만 우리 형제는 아직까지도 라면을 좋아한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고 밖으로 놀러 나갈 때면 항상 형광등 끄기라는 챌린지를 통과해야 한다. 그 시절 형광등은 저학년 초등학생이 컨트롤하기에는 높은 스킬을 요구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 시절 형광등의 스위치는 형광등에서 바로 전선으로 연결되어 펜던트라는 동그란 스위치로 연결되어 있었다. 펜던트 스위치에 막대가 나온 부분을 누르면 불이 켜지고 다시 반대로 누르면 불이 꺼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펜던트 스위치가 저학년 초등학생이 컨트롤 하기에 무슨 높은 스킬을 요구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저학년 초등학생에게 별 무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펜던트 스위치는 항상 우리 머리 위,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물리적 위치인 천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문제였다. 형은 물리적 불리함을 신발주머니로 해결했다. 형이 높이 점프해서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면 운이 좋을 때는 한 번에 불이 켜지기도 하고 꺼지기도 했다. 운이 없을 때는 형이 신발주머니를 3번 정도 휘둘러야 했다. 우리만의 솔루션을 찾은 것인데 부모님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저학년 초등학생들이 신발주머니를 휘둘러 형광들을 불을 켜고 끄는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중 운이 꽤 나쁜 날이었나 보다. 형이 휘두른 신발주머니에 형광등이 깨졌고 깨진 형광등 파편은 형광등을 우러러보던 우리 형제를 고스란히 덮쳤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께 어찌 된 일인지 설명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셨다. 아이들의 물리적 불리함을 신발주머니로 극복하고 자신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어머니는 전기 수리공을 불렀고 우리 형제의 물리적 불리함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셨다. 전선을 벽을 타고 연장해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스위치를 변경하셨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UX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크게 3가지가 UX와 상관이 있다. 첫 번째는 실제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인지하지 못한 것. (부모님은 우리 형제의 물리적 불리함을 인지하지 못하셨다.) 두 번째,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용자의 불편함을 묵인한 것. (부모님은 우리 형제의 물리적 불리함을 해결하기 위한 비용 지출을 꺼리셨다.) 세 번째, 결국 문제를 인지하고 비용을 들여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결한 것.(부모님은 결국 우리 형제의 물리적 불리함이 위험이라는 것을 인지하시고 비용을 지출하셨다.) 위 3가지는 성공하는 UX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첫 번째, 대부분 처음에는 사용자를 고려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하지 못한다. (개발자 주관적으로 UX를 고려했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그리고 사용자 대부분은 처음에 불편함을 인내하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한다. 그러던 중 사용자는 불편함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사소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쌓이고 쌓인 사용자의 부정 피드백이 간혹 크게 표출되기도 한다. 그렇게 매출이 떨어지고 MAU 수치도 점점 떨어진다. 위의 두 가지 수치로 위기를 직감한다. 여기서 위기를 탈출하는 A와 그렇지 않은 B의 선택이 다르다. 처음에는 A와 B 모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분석도 하고 UX 마인드로 문제에 접근하는 동일함을 보인다. 그러던 중 A는 비용을 투자하지만 B는 비용 투자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 바로 여기가 중요한 포인트다. 비용을 투자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상황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의 질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비용을 투자했을 때 아이디어는 더 증폭이 되고 더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아이디어는 제한적이며 점점 편협해지기 시작한다. 비용을 투자해 문제를 해결한 A는 비용 투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후 꼭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UX에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하지만 B의 방식은 제한적인 아이디어로 인해 점점 편협해진다. 그렇게 결과 또한 편협해질 가능성이 크다. 결과가 편협하고 큰 이득이 없으니 굳이 이후에도 비용을 투자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그 당시 아이디어가 별로 였다고 생각한다.)
예전 실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큰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아이데이션을 진행했지만 큰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정해진 예산을 넘지 않는 선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비용은 합당한데 우리의 아이디어가 문제인가? 다시 아이데이션을 진행하면서 조건을 하나 세웠다. 일단 정해진 예산을 생각하지 말고 아이데이션을 해보자. 그러자 아이디어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결국 문제는 정해진 예산에 맞춰 생각하니 아이디어가 편협해진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예산을 초과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시킬 것인가?'가 두 번째 문제였다. 이 문제는 오히려 쉬웠다. 팀원들 모두 같은 답을 말했다. '추가 예산을 신청하자!' 어쩌면 우리가 UX에 대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제한된 비용으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오만함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초기 자본이 넉넉하지 못하다. (꼭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기업이 UX 비용 지출에 인색하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곳에 비용을 쓰기를 바란다. 인건비, 임대료, 서버 운영비, 또 회사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 등이 그럴 것이다. 생존을 위해 그 외 비용은 절감하려 할 것이다. UX에 대한 비용은 절감하고 아이디어로 그 부분을 대신하려 한다면 아이디어는 점점 편협해진다.
'배달의민족'은 초기 서비스 홍보 비용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스타트업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톱스타를 기용해 CF를 찍었고 오프라인 행사와 대외적인 많은 홍보 채널로 광고를 진행했다. 그 당시 '배달의민족'의 적자는 과대한 마케팅 비용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게 2~3년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했고 점차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흑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되어 매출로 돌아왔다. 핀란드에서 온 '슈퍼셀'은 어떠했나? 당시 100명이 넘지 않는 소규모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인 '슈퍼셀'은 '클래시 오브 클랜'이라는 게임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슈퍼셀'의 마케팅 모토는 마치 이러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하겠다.' 그렇게 마케팅 비용 150억을 투자해 강남역 전체를 '클래시 오브 클랜' 게임 캐릭터로 도배했다. (강남역 지하철에서 3보 전진 때마다 클래시 오브 클랜 캐릭터가 보였다.) 당시 게임 CF가 생소하던 시절 TV CF도 진행했다. 150억의 마케팅 비용은 이후 수천억 매출로 돌아왔다. 위 두 사레는 모두 비용 투자의 성공사례다. 물론 서비스와 콘텐츠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좋은 서비스와 콘텐츠를 갖고도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우리 서비스를 알리는 것도 UX의 일환이고 어떤 방식으로 알릴 것인지도 UX의 일환이다. 그리고 알리고자 하는 투자 비용이 많을수록 아이디어는 더 커질 수 있다. 매력적이지 않는 아이디어의 문제가 사실 비용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저학년 초등학생이 신발주머니로 형광등의 스위치를 꺼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