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un SHK Jan 10. 2019

<범블비> - 인간과 로봇의 교감


줄거리

영화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의 오토봇과 디셉티콘 간의 전투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오토봇의 수장 옵티머스 프라임은 오토봇이 전멸 위기에 처하자 B-127(범블비의 본래 이름)에게 특명을 내립니다. 지구로 탈출하여 오토봇을 위한 새 기지를 건설하라는 것이죠. 가까스로 디셉티콘의 공격을 피해 탈출선에 몸을 실은 B-127은 그렇게 새로운 행성, 1987년의 미국 서부에 도착합니다.

한편 18살 소녀 찰리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새아버지, 그리고 새 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찰리는 다정했던 아버지의 빈 자리를 느끼며 함께 했던 추억을 그리워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새 가족들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죠. 아버지와 함께 하던 자동차 수리가 지금의 취미가 되어버린 찰리. 자신의 생일날 고물상을 방문했다가, 고물상 할아버지에게서 먼지 가득 한 ‘비틀’(딱정벌레 모양 자동차)을 선물로 넘겨받게 됩니다. 금방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비틀'은 사실 지구에 도착한 후 기억과 목소리를 잃은 B-127이었습니다. 찰리는 B-127에게 범블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조금씩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에게 닫혀있던 마음은 차고에 숨겨둔 새로운 친구를 향해서 차츰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범블비의 신호를 탐지한 디셉티콘들이 지구로 오게 되며 범블비에게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옵니다.


디셉티콘에게 속은 군 조직이 범블비를 강제로 구금하고, 기회를 포착한 디셉티콘은 범블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합니다. 범블비는 디셉티콘의 습격을 물리쳐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찰리는 함께 우정을 쌓은 범블비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인간과 로봇

영화는 소녀와 로봇의 교감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범블비가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온 기계생명체이니 외계생명체와의 우정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인 모습으로만 보면 인간과 로봇과의 교감에  더 근접해 보입니다.


로봇공학기술이 발달한다면 영화에서처럼 인간과 교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교감이라는 것은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이뤄지므로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아래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해 보입니다.


1. 로봇이 인간의 반응을 읽고 상응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2. 인간은 다른 인간을 대하듯 로봇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질문은 본질적으로 마음과 감정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음을 유기체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기계로 이루어진 로봇은 감정을 가질 수 없겠죠.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을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일종의 알고리즘이라고 본다면,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로봇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논의는 마음과 감정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논의이기도 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한 보다 먼 미래의 논의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그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일 듯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인간이 로봇에 대해서 연민, 공감, 우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입니다. 다시 말해 금속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계에게 인간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TED 영상이 있습니다.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공감과 연민에 관한 영상입니다.

https://www.ted.com/talks/kate_darling_why_we_have_an_emotional_connection_to_robots


강연자는 MIT에서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로봇윤리학자입니다. 강연은 한 가지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연구소에서 자그마한 아기공룡로봇을 만들었는데 정교한 센서들이 있어 사람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도록 말입니다.

이 로봇은 꼬리를 잡고 뒤집어놓으면 마치 불편함을 느낀다는 듯 울면서 몸부림치도록 해놓았습니다. 강연자는 처음엔 정교한 공룡로봇의 반응에 신기함을 느끼지만 고통을 느끼는 듯한 공룡로봇에게 곧 불편함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이 아기공룡이 생명체가 아니라 다양한 부품들로 이루어진 기계인지 알면서도 말입니다.

다음 사례를 한번 볼까요. 연구자는 피실험대상들을 모은 후 5개의 그룹을 만들어 한가지 실험을 합니다. 각 그룹에 하나의 공룡로봇을 주고 한 시간 동안 함께 놀도록 하죠.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피실험대상들에게 공룡로봇을 파괴하도록 지시합니다. 단순한 기계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피실험대상자들 중 누구도 그 지시를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자 이제는 새로운 지시를 전달합니다. 다른 그룹의 로봇을 파괴하면 자기 그룹의 로봇은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지시에도 아무도 따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강도 높은 지시를 내립니다. 실험에 참여한 로봇공룡은 모두 파괴할 것이지만, 대신 하나의 로봇만 파괴하면 나머지 로봇들은 남겨두겠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어렵사리 한 그룹에서 지원자가 나타나 하나의 공룡로봇을 부숩니다. 몇몇의 참가자들은 상당히 진지하고 숙연한 표정으로 부서진 공룡로봇을 바라보죠.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공룡로봇이 단순한 기계부품들의 결합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공룡로봇들에게 감정을 느꼈습니다. 로봇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은 연민,공감의 감정을 느낀 것이죠. 이 실험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단순한 기계인줄 알면서도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로봇은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가능할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로봇에 대해서 감정을 느낍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강연 중간에 아래와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It turns out that we're biologically hardwired to project intent and life onto any movement in our physical space that seems autonomous to us.

“인간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무언가에 대해 의도와 생명을 투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비록 로봇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가 로봇에게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로봇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쓰임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공감과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강연자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인간친화적인 로봇 활용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로봇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연민, 동정심,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로봇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동물들이 자폐아동 치료나 사회성 결여의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을 치료하는데 쓰이고, 노년에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 역할을 이제 로봇이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로봇이 가져올 미래

이제 곧 우리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당장은 SF영화에서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고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로봇들은 아니겠죠. 하지만 단순한 형태의 로봇들이라 할지라도 TED영상 속 사례들처럼 우리는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로봇들이 단순한 반응만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특히 산업용, 공업용 로봇이 아니라 인간에게 특정한 도움을 주도록 설계된 비서로봇, 청소로봇 등은 애완동물처럼 애착관계가 형성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부품들의 결합체임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범블비와 같은 변신로봇과의 교감은 SF영화 속 장면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로봇의 교감은 이제 우리 앞에 던져질 화두입니다. 로봇공학이 발달하고 일상에서 로봇의 쓰임새가 보다 확대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인간과의 교감, 동물(애완동물)과의 교감을 넘어, 기계와의 교감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로봇이 아직 감정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로봇에게 감정을 느끼기에 우리의 삶은 차츰 변화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도 차고에 있는 로봇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설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현대사회에 들어서자 비로소 다른 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은 일이죠. 가축을 기르고 도축할 땐 잔인한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30년전이라면 동의를 받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엔 한걸음 나아가 동물도 생명권과 자유권을 침해받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리고 먼 미래에는 이 논의가 로봇으로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로봇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법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로봇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바뀌게 될 것 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의 미래를 더욱 기다려지게 만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스트맨> - 감정과 성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