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섬 숙소는 시내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면 오고가기 충분했다. 숙소는 카프리 남쪽 해안으로 넘어가는 경사면 중간쯤에 있다. 이 근방 숙소들은 아담한 정원을 갖춘 곳이 많았다.
숙소와 정원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꽃과 나무들이 잘 다듬어져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흔적들이 보여 편안한 숙박이 될 느낌이었다.
그런데 숙소 앞 테라스에 달갑지 않은 소품이 보였다. 녹색의 나선형 모기향이었다.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몰려왔다. 저게 장식용으로 세워놓은 인테리어소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집주인이 일본에 놀러 왔다가 나선형의 녹색 향초를 보고 용도는 모르지만 예쁘다고 느껴 사온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선형 모기향을 처음 개발한 곳이 일본 살충제 회사라고 한다.) 물론 헛소리같은 바람이다.
아니면, 지금이 9월 중순이니 여름 한철 피워놓은 모기향을 깜빡하고 안 치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야외 테라스 테이블 위, 너무나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필시 집주인이 깨끗하게 방청소를 하고 테라스를 정리한 다음, 카프리에서 흡혈당하는 숙박객들을 위해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은 위치였다.
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숙소는 모기왕국이었다. 그것도 악명높은 흰줄숲모기(일명 산모기, 아디다스 모기)의 텃밭이었다. 벌건 대낮부터 달려드는 날래고 부지런한 흰줄숲모기 때문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면서부터 모기향을 피워야했다.
여기를 2박 예약했다는 생각에 취소규정을 찾아봤다. 취소불가인걸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봐야 될 것 같았다. 마지막 심판선고를 받아야 모기와의 사투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될 것 같았다. 당연히 숙소는 취소불가상태였고, 일단 숙박을 해야한다. 모기는 피할 수 없다.
숙소에는 고운 자태를 뽐내는 멍멍이 한 마리가 있었다. 새로운 손님이 와서 반가워 보이는 눈치였지만 멍멍이도 날랜 모기들을 쫓아내주지는 못한다.
모처럼의 장기 휴가에 10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고 온 관광객의 피는 그냥 넘겨지나갈 수 없을까. 모기가 피를 빨려다가 '아, 아직 시차적응도 안되실테고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다가 모처럼 온 휴가이시니 저 흡혈선생은 갓만 고쳐쓰고 가던 길 가겠습니다.' 이렇게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택도 없는 이야기다. 모기의 영양섭취에 자비란 없다.
이탈리아 모기라고해서 피가 낭만적으로 빨리진 않는다. 카프리섬이라고 해서 모기를 찍 눌렀을 때 카프리빛 피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가렵고 또 가려운 산모기일 뿐이다. 세 개의 줄무늬를 띈 작은 생명체들이 빠르게 눈앞을 왔다갔다한다. 순식간에 몇 방을 물린 후 방안 가득 모기향을 피우고나서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늘상 보던 모기지만 여행지에서의 만나는 모기는 좀 더 성가시게 느껴진다. 일상을 벗어나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려던 나의 뒷덜미를 잡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기분이다.
여행의 컨셉에 따라 다르겠지만 휴양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대체로 일상의 번잡스러움과 성가심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싶어한다. 모기는 여름밤의 잠못드는 일상과 피로감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1억7천만년 전 화석에까지 등장하고 극지방과 사막에도 존재한다고 하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놀랄 뿐이다. 다음에 모기가 없는 철에 온다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숙소로 기억되겠지만 모기가 왕성한 철에는 다시 오기 힘들 것 같다.
모기향을 잔뜩 피워놓은 덕에 1박은 무사히 마쳤지만, 나는 두번째 숙박은 포기하고 숙소를 떠났다. 속은 쓰렸지만 잠잘 곳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고 위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