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un SHK Feb 26. 2019

#5 이탈리아 포지타노 - 즉흥성

여행의 즉흥성

카프리섬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포지타노입니다. 세차게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던 페리의 속도가 줄어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진기를 꺼내듭니다. 눈앞에 알록달록한 포지타노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페리에 이는 풍광은 왜 포지타노가 인기 휴양지인지 말해줍니다.


사실 포지타노는 숙박 일정을 잡지 않았던 곳입니다. 페리를 타고 아말피까지 이동할 계획이었죠. (아말피에 숙소를 잡고 포지타노는 한나절 정도만 들렀다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포지타노 풍광을 보니 이곳에 내리고 싶어졌습니다. 급하게 숙소예약 어플을 확인해 보니 마침 적당한 숙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캐리어를 들고 페리에서 내렸습니다. 여행의 주는 묘미가 이런 즉흥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탈리아 아말피 코스트 중 가장 많은 여행객이 들르는 곳이 이곳 포지타노일 것입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해안가에 북적북적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이 9월 하순인지 한여름인지 헷갈립니다.


가을이 오려다가 잠시 로마에 들러 젤라또를 먹으면서 쉬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몇 주는 더 지나야 가을이 어기적어기적 넘어올 것 같습니다.

포지타노의 매력은 암벽을 따라 켜켜이 쌓인 집들입니다. 절벽을 따라 서 있는 집들을 자세히 보면 낡고 퇴색된 건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색상도 자기 멋에 따라 색을 칠했을 뿐 어떤 통일성이나 일관성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이 풍광을 보고 있으면 조화로움이 느껴집니다. 베이지색 배경에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듯한 모습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건물들은 개별로 보면 일관성 없지만 전체로 보면 통일감이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큰 감흥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멀리서 보면 조화롭게 예쁩니다.

포지타노의 숙소는 해안가와는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높은 지대까지 올라가야만 합니다. 처음에는 캐리어를 끌고 이동을 하려고 했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좁은 골목과 높은 계단들을 캐리어와 함께 이동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 곳에는 유료이긴 하지만 포터서비스가 있습니다. 해안가에서 포터서비스 티셔츠를 입으신 분들에게 캐리어를 맡기 주소를 알려주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캐리어를 가져다 놓아줍니다.


물론 이국 땅에서 캐리어를 무턱대고 맡긴다는게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활발히 이용되는 서비스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저는 속으로 '캐리어는 괜찮을 거야, 숙소에 잘 도착해 있을거야.' 자기암시를 해야 했습니다.

페리를 타고 포지타노 해안에 도착한 분들 중 숙소가 산 중턱 어디쯤이라면 고민하지 말고 포터서비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캐리어를 들고 가다보면 극기훈련을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경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휴양지인지 훈련장인지 분간이 안될 수 있습니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는 수많은 계단이 있었습니다. 암벽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보니 해안가에서 숙소로 올라가려면 오르막길을 상당히 올라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올라가지만 10분 정도 지나면 숨이 가빠짐을 느낍니다. 9월 하순인데도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휴가지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가 싶어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허리를 펴고 긴 계단을 앞뒤로 둘러보면 가끔 나이 지긋한 분들이 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담담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나면 문득 내가 너무 투정을 부렸나 싶어 조용히 다시 올라갑니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여행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적대는 포지타노 해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풍광을 볼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다리와 종아리의 고생스러움 대신 눈이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여행지에서는 늘 다리가 고생하고 눈과 입이 호강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리 입장에서는 좀 불공평해보이긴 합니다.

 

드디어 끝없이 이어지던 계단을 올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캐리어는 포터서비스를 통해 잘 도착해 있습니다.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숙소를 배정받고 방문을 여니 조그마한 테라스가 있습니다. 테라스에 나오니 포지타노의 또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숙소에 딸린 미니 테라스

바다를 조망하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절벽 풍경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자그마한 테라스가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바다를 보는 일정이니 산을 배경으로 절벽 풍경을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밤이 내려앉고 하나둘 숙소에 불이 들어오면 포지타노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는 포지타노의 밤은 낮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입니다. 한 도시를 온전히 느끼려면 낮의 얼굴과 밤의 모습을 다 겪어봐야 합니다.


포지타노는 숙박일정에 없던 곳이었습니다. 페리에서 보는 풍광에 반해 급하게 내린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1박 2일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계획했던 일정을 따라갈 때가 있고 갑자기 스케줄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계획된 즐거움을 편안하게 만끽해도 좋고 변경된 일정으로 의외의 행복을 발견하는 것도 좋습니다. 누구도 우리의 결정과 판단을 질책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일상에서는 항상 옳은 답을 찾기 위해 애써야 했지만 여행에서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또 다른 방향일 뿐이고 우리가 하는 결정은 또 다른 답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즉흥적인 1박 2일의 포지타노 일정을 마치고 하루늦게 아말피로 가는 페리를 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이탈리아 카프리섬-공간과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