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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Jun 29. 2019

<기생충> - 자본주의의 룰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부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부유한 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적극적 자유)가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있는 자유(소극적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할수록 두 가지 자유는 모두 감소합니다.


적극적 자유

부유한 박사장네는 하고 싶은 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딸에게 명문대생의 영어과외를 시켜줄 수 있고, 아들을 위해 미술심리치료 교사를 붙여줄 수 있습니다. 운전기사나 가정부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으로 앉혀 놓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기택이네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됩니다. 집안에서 스마트폰을 하려고 해도 와이파이가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겨우 화장실 귀퉁이에서 신호를 잡을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으로 풍족하게 외식을 하기도 어렵고 집안을 꾸미거나 좋은 옷들을 갖춰 입을 여유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돈에 가로막혀 버립니다.


소극적 자유

가난한 기택이네 가족은 불쾌한 것들을 피하지 못합니다. 집안을 허락없이 누비는 곱등이, 술취한 취객의 노상방뇨와 구토, 반지하의 쾌쾌함, 폭우로 인해 집안으로 넘어드는 흙탕물. 가족 모두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반면 부유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피할 수 있는 자유 있습니다.


박사장네는 불쾌함을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습니다. 묵직하게 닫히는 대문과 함께 외부인이 바라보거나 접근할 수 없는 담장과 보안체계가 갖춰져 있습니다. 지하철의 냄새와 번잡 피 운전기사가 모셔다주는 벤츠로 이동합니다. 곱등이와 마주할 일도 없고 취객들의 소란스러움을 겪을 일도 없습니다. 기택이네를 침수시킨 쏟아지는 폭우는 그저 미세먼지를 씻어줄 반가울 비일 뿐입니다.


자본주의의 룰

부자는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가난한 자는 보다 제한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불평등해 보이지만 이 체제는 의외로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를 제한받은 사회를 사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실제로는 재산의 유무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는 불평등한 사회를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는 열려있다는 이념은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효과적으로 잠재웠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공존은 언제나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동일한 기회의 문이 열려있더라도 그 열매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내면의 열등감은 커져갑니다.

이런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룰입니다.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보다 많은 열정과 노력으로 재산을 얻었다면 당연히 그 부를 인정해야 합니다.

반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신분의 높고 낮음을 정하는 것은 아니니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존중해줘야 합니다.


깨진 룰

암묵적인 자본주의 룰은 냄새로 인해 깨집니다.

박사장은 냄새에 민감합니다. 기택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언짢아합니다. 정확히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모릅니다. 행주 냄새, 지하철 냄새와 비슷 쾌쾌한 냄새입니다.

박사장이 불쾌감을 느끼는 기택의 냄새는 기택이 의도한 냄새는 아닙니다. 기택도 박사장네에 기생하며 지내면서 최대한 깔끔하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그 냄새는 기택의 경제적 위치와 환경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냄새입니다.


박사장이 코를 틀어막는 모습이 기택의 눈에는 가난한 존재에 대한 불쾌감의 표비칩니다. 빈부의 차이가 인격적 수치 유발하자 자본주의의 룰은 깨지고 응집된 분노는 폭발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정도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됩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격차도 심해지면 내부적으론 갈등이 응집됩니다. 다행히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의 노력을 존중하고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를 인격적으로 무시하지 않는다는 룰이 있어 분노는 폭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룰이 깨진다면 응집된 분노는 분출하게 됩니다. 기택이 코를 틀어막는 박사장 모습에 폭발한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 자체가 놀랍도록 잘 만들어졌다는 평과 별개로, 보고 나서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이면에 있는 위태로운 긴장과 위험한 분노를 너무나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를 봤다는 기쁨과 함께, 우리가 사는 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들어 주는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때로는 잘 만든 영화가 복잡한 현실을  또렷하고 명료하게 드러내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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