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잠수함 소재 영화
영화는 핵잠수함을 소재로 90년대 중반에 제작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3명은,
미합중국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미국 핵미사일 잠수정 함장이다.
영화 오프닝은 핵미사일 잠수정 함장의 막강한 권한에 대한 짤막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러시아에서 내전이 발생하여 강경파 군부 지도자가 핵미사일 기지를 장악합니다. 핵미사일 암호까지 확보되다면 반군이 언제든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 전개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베테랑 램지 함장과 전도유망한 헌터 부함장이 이끄는 핵잠수함 앨라배마호가 출정합니다.
러시아 근해로 접근하던 중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적의 어뢰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상황에서 앨라배마호에 첫 번째 긴급명령서가 통신으로 접수됩니다.
러시아에서 핵미사일 연료공급을 시작했으니 앨라배마호에서 먼저 핵미사일을 발사해서 선제 타격하라는 내용입니다.
상황은 핵전쟁의 위기로 급박하게 치닫습니다.
명령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진행하던 중, 두 번째 명령서가 접수됩니다.
그런데 잠수정 통신장애로 인해 두 번째 명령서는 내용이 온전치 않게 들어옵니다.
램지 함장은 두 번째 명령서가 아무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첫 번째 명령서대로 핵미사일 발사를 진행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헌터 부함장은 두 번째 명령서에서 발사 중지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통신장애 해결 후 내용을 재수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와중, 램지 함장은 명령을 거부하는 부함장의 직위를 해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헌터 부함장은 '함장과 부함장이 동시에 동의해야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발사 명령을 거부함과 동시에 오히려 규정을 위반한 램지 함장의 지휘권을 박탈해 버립니다.
램지 함장은 함장실에 감금되고 잠수정은 부함장 헌터의 지휘를 받습니다.
이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함장의 뜻을 따르는 일부 승무원들이 감금된 함장을 풀어주고 무기를 장악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이제는 오히려 부함장 헌터와 동조자들이 감금되고 핵미사일 발사 절차가 속개됩니다.
핵미사일 준비가 완료되고 마침내 앨라배마호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려는 순간, 헌터 부함장이 기습적으로 지휘실을 점령하여 열쇠를 뽑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발사는 다시 중지됩니다.
둘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와중,
마침내 통신장애가 해결되고 두 번째 명령서가 온전히 수신되기 시작합니다.
긴장감 속에 함장과 부함장이 함께 확인한 두 번째 명령서.
거기에는 핵미사일 발사 중지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명령서에 따라 모든 전투준비는 해제됩니다.
그렇게 핵전쟁의 위기는 일단락되고 핵잠수정의 승무원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국익을 위한 대립
영화는 함장과 부함장의 팽팽한 의견충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핵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폐쇄된 공간인 잠수함을 배경으로 두 인물 간의 양립할 수 없는 의견충돌이 긴박하고 긴장감있게 그려집니다.
수신된 명령에 따라 핵공격을 준비하는 적에게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는 함장, 두 번째 명령서가 통신장애로 제대로 수신되지 못했으니 확인 후 행동하자는 부함장이 대립합니다.
함장은 최초의 명령서에 따라 핵무기 발사 절차를 진행했고, 부함장은 두 번째 수신된 명령서가 최초의 발사명령을 철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한번 더 확인을 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누구의 편에 서야 맞는 것일까요.
핵전쟁으로의 섣부른 확전을 방지하고자 한다면 부함장의 의견에 따를 것이고,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서 효과적인 선제타격을 원하다면 함장의 의견을 따랐을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평화적인 시기를 보내는 현재 기준에선 압도적인 숫자의 사람들이 부함장의 의견을 따르려 하겠지만, 동서냉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를 겪었던 사람이라면 함장의 의견에 꽤 동조할지도 모릅니다.
램지 함장이 전적으로 틀렸고, 헌터 부함장이 확실히 옳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부함장의 의견이 옳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둘의 주장 모두 충분한 합리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적국의 핵무기 연료공급이 시작된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면 선제타격을 통해 적을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첫 번째 명령서에는 핵무기 발사 명령이 있었고 함장은 그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를 단순히 전쟁광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부함장의 발사중지 논리도 타당합니다. 두 번째 명령서가 통신장애로 인해 수신되지 못했는데 이 명령서에는 핵무기 발사를 취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함장은 최소한 두 번째 명령서를 재수신 받고나서 결정을 내리자는 입장이었습니다. 핵무기가 발사되고 나면 결과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의견 충돌로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경험한 램지 함장과 헌터 부함장은 사건 후 진상조사위원회에 회부됩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당시 승무원들의 진술들을 바탕으로, "둘 다 옳고, 둘 다 그르다... 두 지휘관의 갈등은 국익을 위한 대립이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당시 상황에서 함장과 부함장 모두 국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려 했고, 딜레마 상황에서 의견이 상반되게 갈렸을 뿐이라는 판단입니다.
램지 함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기 은퇴를 요청함과 동시에, 의견 대립을 겪은 부함장을 오히려 차기 함장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위원회는 램지 함장의 의견을 수용하고 헌터 부함장을 함장으로 임명합니다.
전례 없는 내부 폭력사태와 혼란을 야기했지만 함장은 자신의 오판을 인정함과 동시에 합리적 결정을 내린 부함장의 능력을 인정했고, 그렇게 영화는 막이 내립니다.
민주 사회의 대립과 갈등
우리 사회도 국가의 방향성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겪습니다. 치열한 갈등은 민주국가의 숙명과도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주장들일지라도 각각의 목소리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면 그 충돌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권력과 사익을 위한 행동'이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라면 이보다 소모적인 일도 없습니다.
민주사회에선 의견 충돌도 좋고 대립도 괜찮지만 모두 국익을 위한 마음에서 나올 때만 의미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판단 후엔 램지 함장과 같은 면모가 있어야 합니다.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주장을 펼쳤지만 그 주장이 틀렸음이 확인되면 반대되는 입장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정책의 옳고 그름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판단이 가능합니다. 치열한 갈등과 공방이 오가는 시점에서는 누구의 판단이 맞는지, 누구의 판단이 그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주장을 하는 쪽에서 상황을 매번 어물쩍하게 넘어간다면 큰 잘못입니다. 오판을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상대 진영의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민주 사회의 갈등도 본질적으로는 국익을 위해 최선의 판단을 하기 위한 대립이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한쪽의 판단이 옳음이 판명된다면 잘못된 주장을 펼친 쪽에서는 상대방의 옳은 결정을 칭찬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단순히 자리를 위한 싸움이 아닌 우리 사회를 위한 목소리들이 가득하다면 국가도 결국 바른 방향으로 순항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