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수리비 80만원이 입금되다!

by 망원여행자

내용증명이 배달된 다음 날, 노인은 180도 달라졌다.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입금했다고 알려 왔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으로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화장실 수리비로 들어간 돈, 80만원이 찍혀 있었다. 내 통장의 입금 내역을 확인하면서, 아내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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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여보! 이 할아버지가 전화로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나보고 선생님이래요"


3층 노인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던 아내의 얼굴에 마침내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나를 압박하던 노인은 내용증명이란 종이 한 장 앞에서 그야말로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천장의 물길을 잡았듯, 내 삶의 도처에서 들이치는 불합리한 파도들을 글쓰기라는 시스템으로 막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한 시간씩 글을 쓰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신변잡기를 옮겨 적는 초등학생 수준의 일기에 불과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글쓰기는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시스템이 되었다.


“운동권 출신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지면 일은 언제 하나?”


오늘도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불합리한 모욕을 당했다. 예전 같으면 술독으로 감정의 독을 마비시키려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침착하게 미소 짓는다. 오히려 나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도 한다.


'이따가 퇴근하고 나서 일기장에 쓸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고미숙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읽고 쓰는 삶 속에 인생을 바꾸는 혁명이 있다"라고요. 사실 이 사건을 겪기 전까지 저에게 그 말은 그저 독서와 글쓰기를 권장하기 위한 흔한 '수사(修辭)'나 '당위적인 표어'에 불과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말, 하지만 내 삶과는 접점이 없는 관념적인 문장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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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층 빌런'이라는 거대한 버그를 글쓰기라는 시스템으로 해결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읽고 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던 감정의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실존적인 투쟁이라는 것을요.


체험은 지식보다 강렬합니다. 흙탕물 같았던 분노를 문장으로 가라앉히고, 떨리던 손으로 내용증명을 써 내려가며 느꼈던 그 이성적인 희열은 제 존재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마치 스스로 오리인 줄 알고 오리 떼 속에서 꽥꽥거리며 괴로워하던 미운 오리 새끼가, 어느 날 강물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백조'임을 깨닫는 순간과도 같았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백조는 더 이상 오리들과 섞여 진흙탕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아하게 날아올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뿐입니다.

글쓰기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대상과 같은 층위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상황을 조망하게 만드는 힘.


여러분도 꼭 한 번 이 짜릿한 '시스템의 전환'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쓰는 순간, 당신을 괴롭히던 빌런은 당신의 성장을 돕는 한 줄의 글감이 되고, 당신은 비로소 자기 인생의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될 것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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