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천장에 붙어 있는 배관이 왜 3층 거야?

by 망원여행자

여전히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노인을 두고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이번에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노인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2층에서 누수 전문가를 부를 테니, 원인을 확인해서 누구 잘못인지 시시비비를 가려봅시다.“


노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한 수리 기사가 2층 천장을 열어보고 "3층 화장실 하수관이 노후되어 물이 새는 것이 맞습니다. 책임은 3층에 있습니다"라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자 노인은 안색을 바꾸며 기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봐요, 2층 천장에 붙어 있는 배관이 왜 3층 거야? 3층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있는 것까지만 내 거지, 2층 천장에 붙어 있으면 2층 거 아냐? 왜 생사람을 잡아!”


전문가의 진단조차 해괴한 논리로 뭉개버리는 노인은 급기야 수리 기사에게 멱살잡이라도 할 듯 대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대화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알았으니까 일단 고치고 나서 법으로 해결합시다.”


나의 말에 노인은 “뭐라고, 이 자식아! 내가 범죄자냐? 네 마음대로 해 봐라!”라며 소리를 지르고 돌아갔다. 이번 수리비는 80만 원이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리비를 요구하러 찾아가도 노인은 문을 닫아걸고 나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즈음부터 내 몸에는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퇴근길, 저 멀리 노인의 그림자만 보여도 온몸이 바짝 경직되었다. 밀림에서 호랑이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심장 박동은 고막을 터뜨릴 듯 요동쳤고, 뒷덜미는 뻣뻣해졌다.


아내는 이번에도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여보, 저 할아버지 무서운데 그냥 이번에도 우리가 재수 없었다 치고 넘어가요." 고소할 것인가, 넘어갈 것인가.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상대방을 증오하는 것은, 내 입안에 독을 가득 머금고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노인을 마주칠 때마다 굳어버리던 내 몸의 반응은 바로 그 독이 안에서 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화를 낼수록 내 속만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독을 뱉어낼 수 있을까?


‘감정이 격해진 그 상황을 글로 옮기면 객관화가 되면서, 마비되었던 이성이 되살아난다.’


그 책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사실일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펜을 잡고 노트를 펼쳐 사건의 전말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 타오르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글을 쓰기 전 내 마음은 누군가 거칠게 휘저어 놓은 흙탕물 같았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뿌옇게 일어나 사실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가자, 요동치던 흙탕물이 잦아들며 감정의 부유물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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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노인의 입장이 먼저 보였다. 80만 원이라는 돈이 그에게는 생존의 위협이었을 것이고, 무논리와 우기기는 그가 가진 마지막 발톱이었을지 모른다는 연민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최선의 대응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신호등의 빨간불에 멈춰야 한다는 규칙은 사회적 공익을 위한 약속이다. 누군가 그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것을 보고도 방치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불법의 동조다.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막는 사회적 의무였다. 그것은 노인을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 안으로 그를 다시 초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기록을 바탕으로 내용증명을 작성하고 우체국 등기로 발송했다. 우편함을 뒤져서 노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마치 범죄 영화에서 형사 역할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단계로 노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증명을 보냈으니 확인하십시오. 1주일 내로 의견이 없을 경우 소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소송에 진 사람이 소송 비용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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