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르바이트할래요
일반대학에 어찌어찌해서 들어온 나는 공부하면서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외국인학생들도 할 수 있다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에 대해 알아보았다. 외국인 학생들은 학생비자를 가지고 있는데 예전까진 일을 못했지만,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찾아 주에 10시간까지는 가능하게 바뀌었었다.
주에 10시간은 =한 달 40시간 =월급 430유로
그때는 1유로가 1700원 가까이할 때였기에 한국돈으로 한 달 70만 원 내지 조금 넘게 벌 수 있었다.
그 정도여도 1년이면 목돈이기에 저축도하고 또 경험 쌓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곧장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알아보며 이력서를 인터넷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10시간 구하는 아르바이트공고를 보는 데로 이력서를 보냈다. 50개 정도 보냈을까??
드디어 나한테도 면접날짜가 잡혔는데 장소는 축구장이었다. 바로 축구장 티켓사무소 주말 알바를 신청했던 것이다.
면접을 보고 오케이가 떨어졌다. 인생처음하는 알바이기에 날아갈 것 같았고 정말 기뻤다. ^^
알바첫날 축구장에 3시간 전 도착해 컴퓨터 티켓실습을 받고 , 티켓창구를 열었다.
그날경기는 오스트리아 수도를 대표하는 축구팀, 한국의 K리그같이 오스트리아 1군 리그 1위 팀과 2위 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오스트리아사람들도 축구를 좋아할까?라고 잠시라도 물음표를 던졌던 나는 그 생각이 틀리다는 걸 단번에 알아버렸다. 축구 경기 1시간 반 전 사람들이 티켓창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눈을 크게 뜨며 휘둥그레졌던 나는 그 광경에 놀랐다. 정말 개미처럼 창구로 달려들어와 깜짝 놀랐다!!
이 나라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실력이 안돼 잘 못 나가지만 열정은 엄청나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축구장에서는 세 달 정도 일을 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이번엔 축구장알바 경험이 있기에 이력서를 20개 정도 보냈는데 답이 왔다.
바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유명 모차르트 초콜릿 가게 점원이다.
나는 초콜릿 가게에서 꽤 오래 일을 했다. 2년 반정도 했으니 오래 했다고 생각한다.
주중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는 조금 더 땜빵을 하며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는 조금 하면서 세무서에 세금도 내야 한 데서 세금도 낸 나이다. 아주 작고 귀여운 세금이었지만 나도 조금씩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느끼며 또 시간을 허투루 게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아르바이트가 하나 있는데 , 그건 바로 내가 3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추천으로 한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던 때이다.
내가 두 번의 아르바이트는 했지만 다 현지인들이었기에 한식당 서빙알바는 한국인인 나에게조차 생소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설거지 닦는 사람으로 일하는 게 편하다 생각했지만 언어가 되기에 서빙알바를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걸? 몸 따로 머리 따로 움직이는데 내가 목각인형 같았다.
그 결과 알바시작하고 한 달 후 매니저언니한테 꾸중을 들었다. 메뉴판을 못 외워서이다...
내가 한국인이긴 하지만 거의 생활방식은 현지인과 다름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살아 한국음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현지인처럼 시리얼. 소시지. 빵 이런 거나 먹으며 살았다. 가끔 한인마켓에 가서 라면이나 포기김치 같은 걸 사서 먹었지만 , 식당에서 파는 한국음식은 일절 모르는 게 많았다.
제육볶음과 김치삼겹살볶음은 생전 처음 듣는 음식이었고 고기부위에 목살, 항정살 등등 어디 부위인지도 모르며 생소한 이름들이 수두룩했다.
이러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렇게는 알바 짤리겠다 싶어 나는 그날저녁부터 메뉴판을 달달달 외웠다. 모르는 음식은 인터넷사진을 보거나 음식이 되면 사진을 찍어서 이미지로 외웠다.
그때 나는 주방에 자주 들락거리며 뭐가 같이 나가는지 뭐가 이 요리에는 필요한지를 요리사님들께 물어보고 배웠는데 ,
(매니저언니가 한국을 두 달 정도 갔기에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게 이유였다.. )
주방에는 제1요리사분과 제2 요 라사가 있었다.
제2 요리사분은 워킹홀리데이로 온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청년이었기에 이름을 바로 알았다.
근데 제일 경력인 제1의 매인 요리사분은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분을 공략해 친해져야 내가 일을 빨리 배우기에 요리사분의 얼굴은 뭔가 어둡고 슬퍼 보이며 짜증을 내었기에 나는 이름을 매니저언니가 한국 가기 전에 미리 물어보며 어떻게 배울것인지 계획을세웠다.
" 나 : 저분은 뭐라고 하나요?
매니저언니 :김실장이야. 김실장님이라고 불러 "
나: 이름이 김실장인가.. 참 특이하네. 성은 김 씨이고 이름이 실장이 다니..
한국말이 서툴렀던 나는 김실장이 이름인 줄 알고 ,
매니저언니가 한국 가고 나는 "김실장님 저 좀 가르쳐주세요"하며 주방을 들락거렸다.
절대 화내지 않게 , 일 방해하지 않게 , 조심스럽게 물어보며 배웠다.
처음에 꿍하는 그분도 시간이 지날수록 세심하게 나를 더 많이 가르쳐주었다.
제1요리사분 덕분에 나는 빠른 속도로 일을 배웠다. 두 달 후 모르는 음식이 없게되었고 뭐가 손님에게 필요한지까지 단박에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말이 끝난 것이다.
그러며 제1요리사님과 나는 썸을 타게 되었고 그 후 연애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알바시작하는 첫날 제1요리사분한테서는 빛이 보이며 뭔가 이 사람하고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근데 내 몸 간수하기도 바빴기에 그런 느낌은 한순간의 내 착각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 후에 알게 된 나의 단단한 오해 바로 이름이 김실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직급이 실장님이었고 성은 김 씨이니 김실장님이라고 아르바이트생들은 부르게 했던 것이었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당연히 나의 말을 듣고 요리사분은 아주 배가 터지게 웃었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아주 좋아라 웃는다.
그때의 우리의 인연의 시작은 내 첫 느낌이 정답이라는 것을 후에 알게 해 주었다.
눈치챈 분들도 있지만 바로
그때의 제1요리사님이 지금의 내 신랑 남편이다 ❤️
당연히 나이차 있다. 띠동갑을 넘으니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