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에필로그(Epilogue ) "라고 하는 말을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소설이나 연극, 영화, 만화 등 작품의 줄거리가 끝난 후에 덧붙인 보충된 부분을 말하는 말로 후일담이라고도 한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들도 한 회가 끝나고, 마지막 부분에 그 회에 후일담이 방영된 재미있는 일화들도 나오기도 한다.
내 인생이 짧다면 짧고 , 길다면 긴 중간중간의 에피소드들을 이번 편에서는 얘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에필로그는 나의 사촌들과의 일화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형제가 없는 외동이지만 사촌형제들이 아주 많다.
우리 엄마가 5형제 중 첫째 딸이어서 내가 사촌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 나는 3번째로 나에게는 사촌언니와 오빠가 각각 한 명씩 있다. 이유는? 바로 엄마의 동생인 나에게는 두 번째 이모가 결혼 전 혼점 임신이었기에 나보다 먼저 태어난 것이다. 물론 우리 엄마에게 아이가 잘 생기지 않고 또 내 앞에 오빠를 유산한 적이 있기에 타이밍이 늦어진 것도 있다. 하지만 자식욕심과 사촌 중 딸들이 다 두 살 혹은 세 살 터울인지라 티는 안 내는 것 같지만 비꼬아서 비교하듯 얘기하는 말들은 나이가 어려도 알아들었다.
신기한 건 그런 이야기들은 나이가 먹은 지금도 토씨하나 안 틀리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사립학교와 뉴질랜드에 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가족모임을 가져도 잘 얘기를 안 하게 되고, 또 내성적인 성격과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묻는 말에만 "네네" 하였다. 여자사촌형제들이 모이면 연예인이야기가 100인데 나는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에 관심이 1도 없었다. 연예인광팬인 내 사촌들은 누가 누구와 열애설이 나면 눈에 불을 켜고 화를 냈고 인형을 열애설 상대라 하고 때리고 화풀이를 했다. 심지어 내가 연예인 누구 부인 마누라라고 자칭했다.
그때 그 자리에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피할 수도 없음 즐기라 해서 즐기는 척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감정을 숨기는 것을 배웠다. 한마디로 "요조숙녀법". 다른 누구 앞에서도 착한 아이인척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의 바르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화를 안 내고 , 싱글싱글 웃는... 이중인격자 같지만 이 방법은 인생에 때때로 도움이 되었다. 단점은 한계가 올 때까지 자기 자신을 숨기기에 언젠가는 폭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에필로그는 오기와 끈기 그리고 한번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쟁취하는 것에 대한 일화이다.
내가 어렸을 적 힘든 세상 헤쳐나가려면 체력과 끈기 그리고 오기를 길러야 한다는 해병대 출신의 우리 아빠에게 이끌려 주말이 되면 등산을 갔다. 솔직히 초등학생에게 등산이 무슨 흥미가 있었겠냐. 힘든 것도 싫은데 올라가자니..
시작부터 안 올라간다 싸우고, 울고, 가다 토하고 속이 안 좋아 산에다가 볼일보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기어서라도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돌아 내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때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고 싫었던 것들이,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설령 부모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일이 바로 음악을 더 이상 안 하는 것과 결혼이다.
결혼에 관련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해 볼 예정이니
등산의 힘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게 되었는지 뒷 이야기를 읽어보면 대단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에필로그는 풋풋한 일화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하지만 얽힌 이야기들도 많아 첫 만남만 먼저 이야기해 보겠다.
1. 첫 번째는 내가 초등학생 때 같은 음악부의 남자애였다.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도 없고 인사만 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그 애를 동경했다.
성별은 다르지만 뭐든지 잘하고, 악기도 나보다 잘했으며 운동도 심지어 학생회장까지 맡았으니 단연 학교에서 인기최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 애를 동경하는 애들은 많았다. 사람이 멋있어 보인게 처음인지라 그 애 덕분에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를 배웠다.
2. 두 번째는 초등학교 때의 한 학년 선배였다.
첫 번째 동급생 아이를 동경해서 모든 일을 열심히 하게 된 나는 체력을 더 길러야 한다며 부모님의 권유로 방과 후 검도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내가 다니고 한 달 정도 후 같은 학교 한 학년 선배가 검도학원을 다니러 등록하러 온 것이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도 같은 음악 부였다.
음악부에서도 음악장 다음인 이인자로, 누가 늦게 왔는지 안 왔는지 체크하는 사람이었다. 선배와 같이 운동하는 시간은 재미있었다.
3. 세 번째는 뉴질랜드에서의 독일계 뉴질랜드인 동급생. 내가 전학 간 학교에 엄청 잘생긴 애가 있었다. 키가 작았지만 조각 같은 미모의 소유자.
단점은 특유인 외국인들에게서 나는 암내.
한국인들 사이에서 암내 엄청 심한 애라고 하면 그 애를 얘기하는 거였을 정도였다. 같은 학년이니 당연히 친했고 또 내가 집주소를 물어봐 방학 동안에 한국에서 에어메일로 편지도 보냈다. 아! 물론 답도 한국까지 왔다 ㅎㅎ
4. 네 번째는 유럽에 와서 음악학교 다닐 때의 남자동급생.
나의 음악레슨 시간 후에 오는 남자애로 맨날 어깨를 으쓱으쓱하고 와서 으쓱이라 불렀던 애다.
같은 악기를 해 함께 연주하는 날도 많았지만 이쪽도 암내가 심한데 이어 하도 잘난 척을 많이 해 처음부터 친하지는 않았다.
5. 다섯 번째는 바로 지금의 내 남편❤️
처음부터 친한 사람 없다 하지만 이쪽은 더 심했다.
낯가림은 없었지만 사람을 못 믿어 친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 우리의 관계는 실장과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했다. 장소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말이다.
에필로그는 짧게 쓸려고 했지만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 풋풋한 이야기들로만 에필로그 2탄을 써볼 예정이다. 추억은 기억의 한편으로 오래 남겠지만 나이가 먹어도 그때 그 감정과 추억들을 간직하고 싶어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
새해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새해는 계속 다가오고 우리는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하겠지만 2025년의 지금의 해는 지나가버리면 붙잡지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기에 후회 없는 2025년 지금을 모두가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족들에게 감사함도 미안함도 모두 다 전하고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들을 다 이루시길.
2025년 설날인 이번 주를 먼 훗날에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