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유럽으로
한국에서 뉴질랜드까지 비행기로 1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한국에서 유럽까지는?
비행기로 11시간 가까이 혹은 목적지에 따라 12시간 정도 걸리기도 한다.
지구 반대편 거리를 기술이 좋아져 하루 만에 올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 시차는 각자의 몸에 따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과 뉴질랜드 시차 3시간. 그런데 한국과 유럽의 시차는 8시간.
비행기시간도 긴데 시차까지 있어 뉴질랜드 - 한국을 거쳐 유럽 오스트리아로 온 나는 오자마자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몸은 지칠 때로 지쳐 ,오고 나서 며칠은 병든 닭처럼 기운이 없었다.
그런데도 현실은 이런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빨리 다음 것을 하라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정신 차리고
: 내가 첫 번째로 한 것은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기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원을 등록했다.
주 5일 4시간 반씩 가격은 한 달 한화 50만 원 정도였다.
지금은 이때보다 더 올라 한 달에 약 70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두 달 후에 있을 대학교 예비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18세 이하의 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국립음대와 사립음대 예비학교.
시간이 흘러 두 달 후,
정말 그때는 뭣도 모르고 시험을 보았기에 나의 첫 번째 시험은 물 흐르듯 조용히 끝이 났다.
물론 결과는 실패!
한국을 돌아갈까 어쩔까 고민하던 중 , 나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대학교 교수님의 제자선생님에게 눈에 띄어 나는 음악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음악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나의 고민은 처절하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또 부모님이 좋아하니 음악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전공으로 갈 것인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만약 예비학교에 합격했다면은 이런 고민 없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나에게 음악 쪽 재능이 있나 하고 그냥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선택권은 나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선택권이다.
나는 부모님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그 말을 어기면 나쁜 사람이 된다고 , 최악의 사람이 된다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 내가 부모님 말을 거역한다는 건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고 또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마음을 뜯어고쳐야 되는 일이기도 했다.
유럽에 와서 4년의 기간 동안
연이은 예비학교 시험 실패로 나의 자존심은 최악의 밑바닥을 달렸고, 무너지기 일보직전 나는 부모님에게 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음악을 그만하고 싶다고...
나답게 살고 싶다고...
일반 대학생처럼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그렇게 평범하게 음악 말고 일반대학에 가겠다 선언했다.
그 뒤 몇 날 며칠을 울고불고 싸우며 난리를 쳤다.
가족의 사이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고, 서로얼굴 붉히며 영상통화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딸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딸의 손을 들어 주웠다.
너의 인생이니까 후회 안 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장기간의 음악과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음악을 했던 당시 악기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일반대학 합격과 동시에 악기를 팔아버렸다.
그 뒤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후회 안 하냐고...
후회?? 그런 적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나는 트로트도 좋아하고 팝송도 좋아한다.
음악 듣는 것은 지금도 좋아한다.
단지 내가 연주하기는 싫었고 또 살아보니 강자만 살아남는 음악세계에서 돈벌이도 되지 않는 그저 그런 음악연주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