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첫 번째 선택

뉴질랜드에서의 생활

by 샤야

외국인 가족의 유일한 딸로 하숙집에 들어간 나는 전과는 다른 하숙집에 첫날부터 친밀감을 느꼈다.

-차가워 보이며 눈의 초첨이 잘 맞춰지지 않은 아빠

-등치가 있는 여장부 느낌에 사랑 많이 받는 엄마

-미소년느낌은 아니지만 전향적인 금발머리의 큰형

-그리고 그 형과 판박이인 금발머리의 작은 동생까지

내 하숙집의 가족들은 처음 보자마자 단란한 가족 그 자체였다.

왜 차갑다고 느껴진 우리 집과 다르게 따뜻하다고 난 느낀 것일까...

그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의 하숙집에서의 하루일과를 얘기하자면 이렇게 된다.

아침에 하숙집에서 마는 도시락을 들고, 거기 아들들과 같이 학교에 데려다주는 하숙집엄마의 차를 타고 간다.

학교가 끝난 후 시간에 맞추어 또다시 차를 타고 데리러 오면 집에 와서 숙제를 하거나 따로 방에서 공부를 하고 밥 먹고 씻고 그러면 하루가 갔다.

정말 충격적 이게도 저녁 9시면 모두가 다 잠들었다!

"무슨 잠을 이렇게 일찍 자..." 하는 나도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니 몸이 9시면 침대로 향했다.

처음에는 다들 잘 자는지 안 자는지 매번 창문으로 빛을 확인해 잠이 안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mp3로 노래를 듣거나, 핸드폰불로 책을 읽다 졸리면 잠을 잤다.

그런 내가 9시부터 잠을 자니 아침엔 알람시계 없이도 자동적으로 일어났고 , 또 키가 엄청 커졌다. 고기와 야채 그리고 9시부터 잠을 자니 성장판이 열렸는지 내 키는 쑥쑥 자랐고 지금은 그때 키가 커진거에 감사할 뿐이다. 덕분에 외국에서 생활하는 지금까지도 키가 작아서 불편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하숙집에서의 몇 년이 지나고 고등학교 2학년 때쯤 , 대학입학 관련해 고민에 빠지는 사건이 생겼다.

학교에서 우연한 기회로 외국인학생들에게 대학 관련강의와 졸업 후 직장 관련 등 여러 유익한 정보들을 알 수 있는 뉴질랜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주체 한 설명회에 다른 한국인 학생들과 같이 갔다.

그리고 대학을 둘러보고 집에 오는 중 대학이란 거에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다니는 곳은 음악중고등학교라 공부를 다른 데보다 많이 안 해 선택권이 음악관련된 과 외에 없는다는 것이었고,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연주하지만 대학까지 음악 관련으로 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두 번째는 : 대학을 음악관련한 과로 간다고 했을 때 뉴질랜드대학을 나와 어떤 직장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학교를 옮기자 생각했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고 , 여름방학 후 전학을 갈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전학 갈 학교는 공부를 하며 동아리활동도 하며. 혹시 모르니 음악도 하고 대학입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오클랜드 시에 위치한 EP여자고등학교로 말이다.

가디언인 엔젤언니를 통해 알아보며 준비하던 중 나는 아빠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너.. 음악관련해서 더 공부하고 싶음 나라를 옮길 생각 있어? "하고 말이다.

뉴질랜드는 음악이 유명하지 않고 또 여기 대학을 나와도 비전이 없을 것 같으니 유럽에 위치한 곳으로 가지 않겠냐는 거다.

유럽에 있는 모대학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시험 후 18살 이하면 예비학생으로 , 18살 이후엔 정식학생시험을 통해 정식대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다고 한다.

음악에 뛰어난 인재들을 뽑기에 졸업장은 필요 없다고 했다. 또한 18세 이하인 예비학생들도 대학수업을 받을 수 있어, 미리 수업을 받으면 나중에 18세 이후 정식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수업을 또 수강할 필요가 없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내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고 또 앞으로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해 , 도전도 하고 결과도 같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또 거기 가면 음악 말고도 내 적성에 맞는 걸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나는 내 의지로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일이라지만 그때당시 그 제안이 나중에 엄청난 일들을 데려온다는 걸 그때는 상상도 못 했던 나였다.


그렇게 나의 뉴질랜드생활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막을 내리고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커튼이 새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