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유학의 시작

나는 왜 외국에 살게 되었을까

by 샤야

왜 한국이 아닌 외국으로 가서 현제 외국인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얘기하려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형제하나 없는 외동으로 5명의 형제자매 중 첫 번째인 엄마와 3명의 형제자매 중 두 번째인 우리 아빠사이에서 태어났다.

왜? 외동이냐고 물으면 :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엄마는 형제자매가 많으셔서 자식을 낳으면 딱 한 명만 낳아 사랑을 듬북 주고 모든지 다 누리면서 살게 해주고 싶으셨다는 이유에서고

두 번째 이유는 엄마의 몸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적으로 내 앞에 오빠가 있었지만 없어졌다고 하셨고 또한 애가 생기지 않아 여러 한약이나 좋은 약들은 다 먹으셨을 정도였다고 한다.

외동으로 태어났어도 나에게는 한두 살 터울의 사촌언니오빠 그리고 사촌 동생들이 많아 어렸을 때는 방학마다 모여 같이 놀러 다니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모님은 나에게 조금 더 좋은 공부환경과 인생을 살게 해 주기 위해 초등학교 때 공립에서 사립으로 전학을 보내셨다.

훌륭한 커리큘럼이 있는 사립학교는 수영, 스키, 스케이트를 비롯해 교내 경시대회 등등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가르쳐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악기 색소폰을 만나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내 인생 10살 때였다.

수학과 과학에는 소질이 없는 아이 하지만 음악은 재미있어했고 열심히 했다. 그 결과 학교 관악부에 들어가 여러 대회도 나갔다.

기억에 남는 것은 11살 때의 춘천음악경연대회인데 우리 학교가 은상 탔었던 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그때의 연주가 유튜브에 올라와있어 가끔 보면 쑥스러우면서도 그 시절도 있었구나 하며 생각하곤 한다.

경연대회에 나갔던 그 해의 겨울방학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었고 그때의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엄마는 뉴질랜드의 환경이 맘에 들었었는지 1년 후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에게 뉴질랜드 유학이라는 제안을 하셨다.

거기 살기 싫으면 나중에 돌아와서 중학교에 다시 가도 되니 가서 색소폰과 어려운 영어를 배워보겠냐면서 말이다.

나는 중학교 영어는 훨씬 어렵다고 들었고 약간의 숨구멍이 필요해 떠나게 되었다. 또 안 가겠다 하면 슬퍼할 부모님 생각에 못 가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특히 부모님 눈치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아이.

그때의 내가 안 간 다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지만 왜 자기 의견 하나 제대로 못 얘기했을까 하는 후회는 지금도 있다.

12살이라서? 어려서? 부모님이 무서워서?


그렇게 내 나이 12살 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혼자서.. 부모 없이 혼자 외국에서..


*참고로 사촌들과 내 사이는 내가 사립으로 전학 갈 때부터 서서히 달라지더니 뉴질랜드를 가면서부터는 균열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내가 느낀 마음이다. 상대방들의 마음은 그때 안 물어봐서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