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조금이지만 해볼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

by 샤야

내 나이 12살...

가족들과 공항에 왔다.

이때쯤이면 가족들과 다 같이 혹은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같이 가겠지 생각하겠지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언니랑 단둘이서 가게 되었다.

마음이 디숭생숭하며 안 가겠다는 말을 하려는데 "우린 너를 믿어"라는 아빠의 한마디에 불효녀 될까 꾹 참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공항에서 그러듯 게이트 앞에 앉아 탑승시간을 기다리는데 아빠가 준 선물포장을 뜯어보았다. 안에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자서전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와 함께 편지가 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4장 정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그때당시 글씨 많은 책은 좋아하지 않아 가방에 도로 넣어두고 편지를 읽기 시작하는데 내 눈에선 눈물이 떨어져 나오더니 단 30초도 안 돼 게이트 앞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서 혼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를 않고 코눈물 질질 짜며, 비행기 안에 들어가서도 12시간 내내 , 뉴질랜드에 도착해 외국인 가디언 집에 가서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꼬박 5일을 울고 난 나는 그 뒤로 울음이 나지 않고 자포자기 상태로 모든 걸 포기했다.

위로도 바랬지만 그 누구도 한마디 안 했고, 영어도 안 되는 나를 단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았다.

한국에 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를 부모님은 도와주지 않았다. 이것도 못 버티면 낙오자 된다 단 한마디만 하셨다.

세상에 버려져도 이것보단 들 힘들겠지 하며 세상과 민낯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하나 터지면 다른 것도 같이 터진다고 , 그다음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여자중학교로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방에 2층침대 4개로 총 8명이서 생활하게 되었다. 거기에 7층서랍장 1개가 전부였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으로 사용. 밥은 매끼마다 주방에서 제공하였다.

외동인 나는 단체생활에 약한데 , 모든 걸 좁은 공간에서 해결하려니 숨이 막혔다.

물론 기숙사에 한국인들도 있어 심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기억은 내 인생 한편에 너무나도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간직되고 있다.


그래도 여기 왔으니 영어공부라도 해보자 해서 시작한 공부는 6개월 안에 실력이 일취월장해졌고, 여름방학에 한국도 안 가고 영어공부에 매진했으며 뉴질랜드에 오고 7개월 뒤 나는 남섬보다 좀 더 도시인 북섬인 오클랜드에 위치한 음악중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