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정 Aug 08. 2024

다큐도 결국 나를 보여주는 것일까

찍어놓고 편집을 못하는 스스로를 변명하며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설친 지 3개월째. 그동안 인터뷰는 열심히 하고 다녔는데, 편집을 못하고 있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한계치에 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것은 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고, 우려이기도 했다. 도대체 얘가 뭘 하겠다는 건지,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는 피드백은 대학 때부터 정말 많이 받는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정리가 안된 것보다는 그걸 명확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고집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정해버리면 그걸 굳이 작품으로 만들어야 될 이유가 있나...? 그냥 이렇게 에세이로 써버리면 가장 명확하게 전달될 것을... 굳이 영상으로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계속 목표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듯 작업을 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사람에게 누구를 인터뷰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캐스팅하고, 이 주제가 좋아 보였다가 저 주제가 좋아 보였다가 그런 식으로 리포터처럼 열심히 돌아다니기는 했는데, 뭔가 정리가 잘 안 된다.


사실 나는 편집을 하기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를 다 담아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러려면 러닝타임이 8시간은 나와야 할 텐데... 그렇게 긴 러닝타임을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 이야기는 계속 확장되고, 재밌는 주제는 매번 바뀌고, 이걸 어떤 식으로 연결해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어떤 느낌이냐면 퍼즐이 좋아서 여러 개를 사고, 이걸 시간 날 때 다 맞춰야지 해놓고 전부 다 쏟아놓은 느낌...? 저 조각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다.


사실 나는 가장 빠른 해결방법을 안다. 더 이상 걱정이나 생각을 하지 말고 하루빨리 편집을 하는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편집본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하고 보는 것이다.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마음은 가라앉고 머리는 차가워진다. 편집이라는 것은 자르고 붙이고 추출하는 단순노동이니까. 물론 무엇을 자르고 어떻게 붙일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만.


오늘도 편집을 하겠다고 노트북을 들고 명필름 카페로 돌진했다. 오후 1시에 땡볕을 온전히 받으며 3000보 정도를 걸어갔다. (파주는 버스가 잘 안 다닌다...) 덥고 얼굴이 타들어갈 것 같았지만,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즐길 생각을 하니 매우 힘이 났다. 굳이 명필름을 간 이유는 그냥 거기가 좋아서. 언젠가 같이 일하게 될 곳이라는 은근한 나의 기대감에 남몰래 설렐 수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런 마음에 기대서라도 편집을 끝내고 싶었다.


근데 노트북을 켜자마자 마우스가 안된다. 무선 마우스인데 배터리가 나갔나 보다. 근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접고 이렇게 된 김에 책이나 읽고 편의점 들려서 배터리 산다음에 숙소 가서 해야겠다 싶어서 카페 책장으로 향했다.


나 이 책 집에 있는데... 심지어 맨날 머리맡에 두고 자는데... 왜 여기에 와서야 보인 걸까.


고레에다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의 자서전이 특히나 도움이 되는 이유는 작품을 만들 때 이런 고민까지 자잘하게 하는 나는 정말 너무도 겁쟁이가 아닌가 싶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다른 감독들과 많은 담론을 나누고, 많은 시도를 해왔다는 것이 모든 문장에서 느껴진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란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한 가지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요?  


아마 나는 저 대목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끄덕끄덕하면서 종이를 넘겼을 것이다. 작년 겨울부터 올봄까지 내내 저 책을 끼고 살았으니까. 근데 막상 다큐멘터리를 찍는 입장에서는 저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다큐멘터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겁이 났을 수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막혔던 이유는 내가 사람들에게 이 인터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보여주고 싶은지가 빠져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객관성'이나 '사실,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라는 말에 숨어서 나를 은근히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나는 이제 나 혼자서 만든 이야기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말을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한계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약하고, 어떤 지점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는지 첫 작품을 온전히 혼자 만들어보면서 겪어봤기 때문이다. 체력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견을 통해 변하면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작업이 되기 위해서는 출발점이 명확해야 한다. 이 다큐를 찍으려고 하는 이유와 이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싶은지 그 이야기들이 명확해야 했는데, 한 번도 그 지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나는 출발을 한 적 없이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여기도 찔러보고 저기도 찔러보고 그랬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해 보겠다고 만든 프로젝트인데, 뭘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람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바라보는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왜 나는 이런 고민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4/26-5/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